Insight Note

Insight Note 008 그게 참~ 뭐라고 말해야 설명이 되나 ?

BoomSoon Dream 2026. 7. 11. 20:21

위대한 성공을 향한 인간들은 아주 작은 습관과 아주 작은 보람에서 출발합니다.

이 사람들은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이 있었죠. 교과서에 나온 사람만 해도 얼추 수만 명은 될 것 같은데요.

우선 가장 위대한 사람들의 성공이란 것을 들여다보면 아주 돈이 많이 번 사람, 권력이 아주 많은 사람, 많이 공부하여 학자가 된 사람, 대중적으로 추앙을 받는 사람,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 인류 모두에게 도움 되는 위대한 발명가 등을 보통 성공하였다고 하지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성인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들은 적어도 아주 작은 일상의 습관을 자기의 자아를 만들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를 다듬은 사람들입니다.

재미난 것은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이걸 잘 안 가르쳐 줍니다.

그들만의 노하우는 좀처럼 알아내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이 답은 이글의 맨 뒤에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이 노하우는 말과 글로 도 저히 전달 할 수 없이 그들만이 체득한 것으로 어느 정도는 언어로 전달이 되나 그들의 의중에 담은 이야기는 전달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체적 관점에서 도저히 전달을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적절하게 표현한 노자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노자를 심층적으로 배워보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도덕경의 첫머리부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노자의 문장 구절은 수많은 해석자 제 멎 대로 나름의 해석들이 있고, 누가 해석한 것이 맞고 틀리다고 말하는 비평도 많이 있으나, 좀 다르게 해석해 보면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 라고, 해석해 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말한다는 인간의 한계는 말로 도를 해석할 수 없고 이름을 이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간의 관점이 들어간 이름이라서 그 사물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으로 나름 해석해 봅니다.

그러니 자연 자체를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지를 설명해 준 기가 막힌 문장으로 보여 인간의 한계를 설명하는데 충분하여 부득불 가져왔습니다.

도는 있기도 하고, 알기는 아는데 인간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거지요. 첫 장의 구절을 보면 ()”이란 글자가 있습니다.

이걸  한자 옥편에서 찾아보면 검다, 검은빛, 하늘, 하늘빛, 멀다, 그윽하다 등의 뜻을 찾아볼 수 있죠.

검다는 말이 주 의미를 이루지만 너무 검어 보이지 않고 무언가 잘 보이지 않고, 해석을 해보면 긴가민가라는 어렴풋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동양인들도 해석을 제각각 하는 것 보면 자신감이 없어 노자를 지금으로 모셔 와 강의를 들어야 할 판인데 서양인들은 언감생심겠죠.

노자가 태어났던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로고스를 대상으로 연구를 해볼까 하던 시절이었으니 동서양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암튼 자아를 완성하지 못하여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이 조그만 습관을 들이기가 무척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힘들까요?

성공한 사람들의 전기나 기록들에서 성공의 노하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살았던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죠.

그리고 이룬 것은 이것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노력과 방식을 지금 사뭇 달라진 현실에 가져다 놓으면 과연 실현이 될지 의심해 봅니다.

어떤 것은 아예 손도 안 대고 해결된 것이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현실 구현이 어려운 것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환경과 세월 속의 산물이기 때문으로 지금 해 봤자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인식 체계 등 이런 변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옛날 고사를 찾아볼까요.

옛날 과거의 사례를 인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세월의 변화, 멈추지 않는 역사의 흐름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들여놓아 봅니다.

이번에는 이단아 장자의 고사입니다.

이 상황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시간, 장소를 우선 상상하여 봅니다.

이 고사는 춘추전국 시대 오패 군주 중 하나였던 제환공과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이란 작자가 대화하는 내용입니다.

제환공이 시원한 대청에서 옛날 고사를 읽었고, 마당 한 쪽에서는 윤편이란 작자가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배경입니다. 대청 아래에서 수레를 깎던 윤편이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잠깐 환공에게

윤 편 : ”왕이시여, 지금 읽는 책은 어떤 내용이옵니까하자

제환공 : 성인의 말씀이다.

윤 편 : 성인이 존재합니까?

제환공 : 이미 돌아가셨다.

윤 편 : 그럼 대왕께서 보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지요.

제환공 : 과인이 글을 읽는데 수레 깎는 자가 어찌 논의하려는가! 설명은 괜찮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다.

윤 편 : 신이 하는 일로 살펴보던데, 수레바퀴를 헐겁게 깎으면 여유로우나 튼튼하지 못하고, 빠듯하게 깎으면 힘겹기만 해서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헐겁게도, 빠듯하게도 깎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여 마음으로 호응하는 것이어서 입으로 말할 수 없지만, 그 사이에는 많은 수법이 들어 있습니다. 신은 신의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신의 자식도 신에게서 전수 받을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나이가 일흔에 이르도록 이렇게 늙어서까지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그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읽는 내용은 모두 그분들의 찌꺼기라는 겁니다.

 

제 해석이 혹시나 해서 원문을 올려 봅니다.

원문 ”:“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 公之所讀者, 何言邪. 公曰, 聖人之言也. ,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无說則死. 輪扁曰, 臣也以臣之事觀之. 斲輪, 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乎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온고지신, 술이부작, 참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안 맞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수명이 30~40년일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절이 몇 년 되지 않고, 애를 낳아 막 자라나는 아이한테 습득한 것들을 물려줄 시간이 몇 년밖에 안 되겠죠.

그래서 인류가 먹을게 흔해져 수명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나마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전 소통의 수단만 봐도 지금처럼 빠르게 할 수 없었죠.

 

그러니까 상황이 지금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그 이전으로 올라가서 짐작해 보면, 그분들이 보았던 교과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사서삼경을 외우고 읊조리면 기가 막힌 천재라 했고, 오죽했으면 조선시대 관리 채용 시험이 사성 삼경이겠냐는 겁니다.

 

지금의 교과서는 양자 물리학, 우주 천문까지 들여다보는 시절이 되었고, 선비는 무려 다섯 수레의 책을 섭렵해야 한다고 하는데 요즈음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좀 과장하여 열 수레도 더 읽습니다.

어른들이 아직도 어렵다고 하는 컴퓨터 다루는 기술은 신기에 가깝습니다.

아이들 책 읽지 않는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어른들보단 더 읽을 시간도 있고 여유가 있습니다.

아까 말한 왜 그들은 후인들한테 가르쳐주지 않나를 질문했는데 이제는 그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가르쳐 줄 수가 없는 내용도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하나 객체로 존재하면서 일정 표준 교육을 받긴 하나,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인식 체계가 다 다르고 학습 수용 능력 또한 다 다르게 때문에 알려줘도 전달하기 꽤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도 알려 줄 수 있으면 꼭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