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Note

Insight Note 004 이야기꾼들의 세상과 대화

BoomSoon Dream 2026. 7. 8. 08:41

말처럼 쉬운 게 없고, 그 말을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저녁때 술집에 가면 조용한 입은 별로 없습니다. 사뭇 시끄러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상대편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라서 자신도 평소보다 비교적 높은 소리를 내게 됩니다. 웃으면서 이야기해도 목소리가 높아 언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싸우자고 덤비는 목소리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약속했던 이야기들이 다음 날 뭘 어떻게 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아도 나쁜 놈 소리를 듣지 않는 게 일상적입니다.

별의별 소리를 지껄이고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는 표정만 지어도 술에 취한 상대편은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야 이 사람 날 이해하네, 혹은 날 알아준다고 하는 등의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누구든 다 그렇습니다. 몇 시간 동안 술잔을 기울이며 하는 말들의 내용을 보면 나라를 들었다 놓고 만리장성보다 거대한 건물을 짓고 달나라를 수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보다 더한 것도 만들어 냅니다. 거기다 술까지 먹어 놓으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상상력과 귀신도 우려먹을 말을 기가 막히게 구사합니다. 그런데 대화는 아니었죠.

말이라는 것은 주어가 바뀌어도, 또 쓰지 않아도, 엉터리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물론 표정에서 읽는 말도 있지만 무언이라도 상대방은 알아듣습니다.

 

평범한 수준으로 대화를 잘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수준으로 대화를 잘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화를 더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대화자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훌륭한 대화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런 사람은 이야기꾼이지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훌륭한 대화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대중 앞에 서는 강연자이지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훌륭한 대화자는 쌍방향 소통을 끌어내는 데 달인이라고 봅니다.

훌륭한 대화자는 서로를 이해시키는 상호 탐색을 유능하게 이끄는 사람입니다.

좋은 대화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무언가를 탐구하는 행위입니다.

누군가가 완성되지 않은 생각을 말하면 다른 사람이 그 핵심을 포착해서 그것을 가지고 이어가면서 제 기억을 토대로 관점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피드백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예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도록 자극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대화를 시작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종결되는 것이 좋은 대화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핵심을 포착할 수 있거든요.

상대방 말을 헛듣거나 흘려들으면 열심히 듣는 척으로 끝나고 대화를 잘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듣지 않으면 어설픈 청자가 되는 행위는 아예 하지 않는 게 피차가 좋은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상대방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질문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방을 따라가라는 뜻입니다.

말도 듣고 눈으로 그의 말을 들으면 100% 상대방에게 긍정적 호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대화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자기를 억제하는 것과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새롭고 낯선 것을 이야기하려면 독과점 대화가 되기에 쉽게 동화되지 않으며, 상대방은 호기심을 잃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선호하는 것과, 애착을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방 말을 청취할 때는 세밀한 관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화에 필요한 질문을 잡아낼 수가 있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경험했던 내용 중 잊었던 내용을 회상하도록 하면 길게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육하원칙에 따라 질문하면 환상적인 대화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겠지요.

만약 상대방의 경험이 잘못된 것이라면 지적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 이외에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대화자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중간에 분위기를 전환한답시고 쓸데없이 끼어들면 대화가 단절됩니다. 이것은 상대편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게 되죠. 하지만 상대편의 말을 가로막을 필요가 있다면 몸의 변화, 눈의 변화, 표정의 변화 등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말보다는 더 효과적입니다.

그 행동을 통해 상대방 말에 대꾸하는 기다림은 810초 정도이며 그다음 대꾸하는 것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한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잘못된 견해, 해석을 바로 잡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 이야기에 오류가 생기면 그 오류를 상대방이 정정할 수 있도록 하고 이야기가 산만하게 흐르면 핵심을 찾아주는 대화로 유도 질문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설사 자기가 상대방의 이야기에 이해, 동의, 감동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해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꼭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야기 중 좋은 질문을 하여 대화를 풍요롭게 만들지만, 종종 내가 던진 질문이 상대편에게 날 무식쟁이로 인식할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 사안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나를 보호하려는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질문이 없으면 없을수록 관심이 없거나 집중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 좋은 질문은 겸손한 자세이자 모른다는 전제에 배우고 싶다는 고백이므로 질문의 내용에는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깔게 됩니다.

저급하거나 질이 낮은 인격이 갖고 있다는 것을 인간들은 최고로 싫어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존중받을까, 어떻게 하면 고급스러울까를 날마다 생각합니다.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 접근과정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고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평온과 안전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지 않는다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정치는 매력적인 사회적 치료 방법입니다. 우울, 고독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요즈음 정치 동력은 주로 분노, 사회로부터 존중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감정입니다. 정치인과 미디어의 유명인이 지닌 목표는 자기 진영은 정서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진영을 정서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데만 치중하는 비정치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정의 정치를 실천하는 이들의 목적은 새로운 정책을 만들거나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위와 명망을 얻으며 자신의 영달에만 신경 쓸 뿐입니다. 그래서 유세 현장에 가보면 상대방 비방에 가장 열을 올리고,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그저 표만 얻어 당선되는 정치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날까요?

20세기를 넘어오면서 우리는 산업화에 중점으로 두고, 등급제 확산과 심화, 산업화에 맞는 교육체계 미확보 등이 한몫했으며, 이에 따라 사람들이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타협과 협력의 바탕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세월의 권력이 사회 편향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향을 받은 지금도 협력하지 못하고, 이에 고독하다고 느끼며, 우울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꾼들이 들썩이고 대화의 장은 매우 드물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기득권 언론과 미디어의 채널이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대화가 어렵다는 것은 개인적 차이 및 권력 불평등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일방적 지식의 전달이 대화의 장벽이 되었고, 한술 더 뜨기로는 절박하고, 치사한 상술들이 더욱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는 바람에 상호 존중은 물 건너가고 대화의 장은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린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이런 와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부드러운 시간이 또는 몇이나 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