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Note

Insight Note 001 행복을 찾으려는 그 바보 같은 고생에 대하여

BoomSoon Dream 2026. 7. 5. 14:00

우리는 날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무언지도 모를 행복을 찾기 위해 별짓을 다 합니다. 행복해지려고 기다리고, 바라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갖은 고생을 다 합니다. 혹시나 하고 로또를 사보기도 하지만, 처음 했던 기대에 못 미치면 저녁 무렵에는 파죽음이 되어 마음이 너덜거리기 일쑤입니다. 하루 종일 행복해지려고 애쓰다 보면 그 이루려는 긴장과 집착 때문에 되려 스트레스만 쌓이곤 합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날마다 행복해지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라고 권해봅니다.

우리가 바라는 그 행복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냉정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행복은 어디 먼 곳에 따로 있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더라구요. 다만 내 삶에 불행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 상태를 행복인 줄 알고 만족하는 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이상한 불행이 찾아오면 그걸 극복하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행복에 대한 집착이 정작 내 곁에 있는 진짜 행복을 차버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곤 합니다.
한 치 앞의 미래조차도 모든 게 다 불확실하여 행복을 방해하는 불안 덩어리일 뿐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지 상상하는 일에 참 서툽니다. 그러니까 진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다 잊었노라, 이제는 다 내려놓았다고 말하면 무척 행복해질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순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몸을 돌려 현실로 오면 불쑥 머릿속을 지배하는 '돈'이라는 존재가 차가운 갈등으로 다가오는 게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자신의 편향적인 면을 날마다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행복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 듣는 것, 보는 것, 입는 것 등 모든 행위를 철저히 나의 입장으로만 받아들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날마다 저지르는 이 인간적인 습관에 이름을 붙이자면 바로 '확증편향'입니다.
즉, 내 입장으로 세상을 해석해야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에 날마다 스스로를 합리화한다는 뜻입니다.
어쩌다 내 생각과 다른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내 합리화 성벽을 지키기 위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을 족족 반대하고, 부정하고, 비판하고, 왜곡하며 배제해 버립니다.
내가 들여놓은 나만의 정보와 다름, 동떨어짐, 이견을 마주했을 때 겪는 정신적인 피로를 피하고 싶어서, 내 견해를 바꿀 필요가 없도록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인간만의 오래된 버릇입니다.

여기, 우리가 매달리는 가치 기준과 삶의 목표를 한순간에 허망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오래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이 동쪽으로 진격하던 시절, 그와 똑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은 정반대였던 디오게네스(BC 412~323)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는 황제가 되어 서른세 살 한창 나이에 삶을 마감했지만, 디오게네스는 무려 여든아홉 살까지 천수를 누렸습니다.
이미 가버린 사람들이지만 두 사람 중 어떤 삶이 더 나은지 저울질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다가와 으스대며 "나는 위대한 왕 알렉산더이다"라고 말을 건네자, 디오게네스는 덤덤하게 "나는 개 디오게네스요"라고 대꾸했습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개라고 불리냐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베푸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흔들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짖고, 나쁜 놈들은 물어버리기 때문이오." 한 번은 광장에서 밥을 먹고 있는 그를 향해 젊은이들이 "어이, 개!"라며 놀려댔습니다.
디오게네스는 도망가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이 채소 뿌리 따위는 개도 먹지 않으니, 빙 둘러서서 나를 구경하는 너희들이야말로 진짜 개다."

당시 디오게네스는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던 대단한 실력의 현자였습니다.
플라톤에게 그를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더니 한마디로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그를 아주 현명한 사람으로 여겨 곁에 두고 싶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참모를 시켜 "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편지를 보내자 디오게네스는 외려 껄걸 웃었습니다.
"죽인다고? 웃기는 소리 마라. 그런 일쯤은 이 땅에 사는 독거미나 풍뎅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내가 두려운 건, '네가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아도 나는 아주 행복할 것'이라는 너의 협박이면 몰라도."
이만하면 디오게네스의 배포와 그가 추구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끼 밥만 먹으면 기름진 음식을 탐하지 않아도 한 세상을 당당하게 살 수 있음을 이 현자는 증명해 보였습니다.
요즘은 하도 먹을 게 많아 약간만 노력해도 굶지 않는 시절인데도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 아등바등하는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동양 쪽으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눈만 뜨면 창칼을 들이대고 더 많은 것에 욕심을 내며 온갖 죄를 저지르던 아수라판, 바로 춘추전국시대(BC 770~221)입니다.
이 잔혹한 난세 속에 장자(BC 369~289)라는 인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 노자·한비열전에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장자는 몽현의 말단 벼슬아치 노릇을 했는데, 까마득한 선배인 공자를 엄청나게 비판하며 틀에 박힌 유교 사상을 단숨에 씹어 삼키던 인물이었습니다.
초나라 위왕이 장자의 현명함을 전해 듣고, 사신에게 고급 예물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 재상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사신이 당도하자 장자는 대뜸 물었습니다.
"천금이라 하면 거금이고 재상이라 하면 최고 높은 벼슬이지만, 사신 당신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소를 아십니까?
소가 살아있을 때는 고급 옷을 입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 살찌우지만, 막상 제사 날이 되면 결국 목을 내놔야 합니다. 그때 가서 저 건너 돼지우리 간에 있는 돼지를 부러워한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신 그대는 빨리 돌아가 나를 더럽히지 마시오. 차라리 나는 이 진흙탕 속에서 내 마음대로 놀며 나만의 즐거움을 찾을 것이오. 권력자에게 구속받지 않고, 죽을 때까지 벼슬 나부랭이는 하지 않으며 내 마음대로 쾌적하게 지내겠소."
장자의 『열어구』 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한술 더 뜹니다.
송나라의 '조상'이란 자가 진나라 사신으로 갈 때는 삐걱거리는 수레 몇 대만 끌고 가더니, 돌아올 때는 진왕의 환심을 사서 수레 수백 대를 거느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꾀죄죄한 몰골로 짚신을 삼고 있던 장자에게 와서 은근히 으스댔습니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누추한 곳에서 짚신이나 삼으며 얼굴이 누렇게 떠서 사는 건 난 못하겠네. 왕을 잘 보필해서 수레 수백 대를 얻어내는 게 내 최고의 기술이지."
그러자 장자가 이야기합니다.
"진나라 왕이 병이 나서 의원을 불렀는데, 종기를 터뜨려 고름을 없애주는 자는 수레 한 대를 얻고, 항문의 치질을 핥아주는 자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다더군. 치료가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수레를 많이 준다던데, 자네는 도대체 왕의 어디를 빨고 핥아주었길래 수레를 수백 대나 받아왔는가?
이 지저분한 놈아, 당장 물러가라." 장자는 인생의 가치 척도 자체를 남들과 전혀 달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세상 이치상 내 재산보다 대여섯 배 많으면 맞짱을 뜨려 하지만, 백 배가 많으면 머슴이 되어 굽신거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자는 자기의 행복을 최고 우선시했습니다.
역사 이래 세상이 말하는 부와 자존심, 행복을 동시에 움켜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노력의 총량 법칙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도망치려고 이쪽저쪽 굴을 파는 토끼는 결국 그 굴을 파느라 세월을 다 보내야 겨우 목숨을 보존합니다.
인류사를 관통했던 위대한 철학자들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모진 불행과 죽음의 문턱을 처절하게 겪어낸 이들이었습니다.
그 곤궁을 벗어나려고 깊이 생각했던 것이지, 먹고살 만한 부자였다면 미쳤다고 그런 어려운 고뇌를 깊이 했겠습니까? 설령 했을지라도 다분히 피상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행과 모진 고초를 겪어본 자만이 행복의 진짜 가치를 아는 법입니다.
불행이 없었으니 찾아올 행복의 달콤함을 알 턱이 있겠나 하는 것입니다.
한방에 찾아오는 날강도 같은 행복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중국의 근대 석학 임어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높은 곳을 노리지 않고, 이렇게 낮은 곳에 있어서 땅에 달라붙어 흙처럼 되어버린다고 해도 나는 아주 만족한다.
내 마음은 흙이나 모래 속을 유쾌히 노닐며 그것으로 행복을 느끼리라." 남들 때문에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방향성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대상은 욕망의 확장이 아니라 믿음, 사랑, 자비, 봉사, 배려, 그리고 존경 같은 것들입니다.
나를 향한 집착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타인을 돕는 행동을 삶의 목적으로 삼을 때, 우리 인생에는 비로소 겉치레가 아닌 진짜 활력과 진정한 행복이 깃들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