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상 그 누구든지 돈이 적든 많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산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남자라면 돈과 명예와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지식의 유혹에는 넘어가 공부도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었기에 책도 쓰게 되고, 다른 사람 비판도 많이 하고, 한마디로 이단아였죠. 우린 길을 가다 엉뚱하고 이상한 짓을 하면 저놈 미쳤나 하죠.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어렵다기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남과는 사뭇 다르게 되면 우린 괴상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거나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은 똑똑한 이단아였던 거죠.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살지만, 왜 사는가에 몰입하고, 기존의 사회적 관행이나 평범함을 거부한 천재였죠.
요즈음 같은 자본주의에서는 멍청이, 바보, 병신 아니고서야 유혹을 뿌리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정말 그랬는지, 그러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회를 알았을 무렵 처음부터 그랬을까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들이 다 했던 것처럼 공무원으로 출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고위급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불평불만도 했겠고, 월급도 쥐꼬리만 하니, 별로 업무에 천착하지도 않았겠죠.
그러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만두고 아예 사회와는 담을 쌓고 산 사람으로 장자라는 사람입니다.
이 장자는 이상적 삶인 것은 근심의 근원인 자기의 육체ㆍ정신을 버리고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어떠한 것에도 침해받지 않는 자유ㆍ독립을 얻어 세계의 밖에서 초연하게 노니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싫은 신선놀음하는 뜻 모를 이야기만 남겼죠.
이 인생론의 밑바닥에는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다른 세계관과, 개념적 인식과 가치판단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고, 철저하게 부정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참으로 독특한 사유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답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그의 책을 보면 ‘이런 미친놈도 있나?’ 할 이야기만 남겨놓았습니다.
장자는 BC 369? 정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물음표 한 것은 그가 정확하게 태어난 해를 모르기 때문에 아마 그때쯤일 것이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태어난 해도 정확하게 모르나 그때쯤 사회상이랄까, 역사에서 들먹거렸던 사람들의 연도를 추정해 보면 대충 출생 연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의 출생 연도를 게임 이름 369로 알아두면 조금 편리합니다.
그리고 그는 80살 정도 살다가 더 이상 지구에서 살지 못하고 286년에 지구를 떠나게 됩니다. 죽었죠.
지금도 지구에서는 여기저기서 땅따먹기로 서로 싸우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중국 대륙에서는 눈만 뜨면 대가리 터지게 싸움만 하던 춘추•전국시대 그때 태어난 사람입니다.
기록이 많은 공자는 BC 551년생이니 180년 정도 차이 나고, 역시 출생 연도가 헷갈리는 BC 571년생 노자와는 거의 200년 넘게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맹자는 BC 372년생이니 3년 차 거의 동년배입니다.
그러니까 주나라의 세운 년도, 춘추와 전국시대로 나뉜 연도, 망한 연도 사이에 세상을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생각했던 사람들의 출생 연도를 보면 이렇습니다.

거의 2,000년 동안 그동안 역사 속에서, 또 현대의 각종 미디어에서 이 사람들을 빼놓으면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돈 벌어 먹고살았고, 철학책에서 이 옛날 사람들을 빼놓으면 할 말이 없는 그런 분들입니다.
춘추전국 시대 송나라 사람이라고 합니다.
송나라 사람이니 동이족 상나라가 망하고 이어받은 나라이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자라고 뒤에 붙거나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지만, 당시에는 워낙 유명한 사람은 성 뒤에 ‘자(子)’를 붙여 사람을 높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장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름이 ‘주(周)’이니 ‘장주’ 였습니다.
사기 열전에는 장자는 하남성이 출생지라고 하고 칠원인가 어딘가에서 농장을 관리하는 관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엄청나게 똑똑했다고 합니다. 거의 모르는 게 없다고 사마천은 거의 천재급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가 쓴 책은 10만여 자로 엮은 ‘대저(大著)’라는 책이 있는데 거의 다 에둘러 말하는 우화였다고 합니다.
장자는 옛날 노자를 엄청나게 좋아하여 노자의 글을 패러디하고 덧칠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와 교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우화에 출연해서 기막히게 연기하는 것들은 인간은 말할 필요 없고 무생물부터 생물까지 다양하게 들어와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출현한 동물들은 선배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향해 욕도 하고, 못했니 잘했니? 하면서 삿대질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장자는 200년 정도 전의 공자가 주장한 것에 대해 그 무엇이든 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틀렸다고 합니다. 어부, 도둑놈, 협잡꾼을 동원하여 서슬 퍼렇게 공자를 욕하고 있습니다.
공자를 비난하고 노자를 이렇게 세웠습니다.
그 이전 장자 앞의 시절에 철학을 논했던 인사들은 노자는 빼고 모두 욕받이 대상이었습니다.
장자는 공자와 한 번도 타협한 적이 없습니다. 말하는 족족 욕 아니면 비판으로 도배합니다.
그의 책은 허무맹랑한 줄거리가 많이 있고, 읽다가 정신 줄 놓으면 도대체 뭔 이야기를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 다시 읽다가 졸려 잠을 자게 됩니다.
장자 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노자와 마찬가지로 뜬구름 잡는 듯합니다.
자연의 모습과 대비되는 인간의 문제를 아주 철저하게 우화로 엮었지요.
그는 자신이 죽고 사는 문제를 초월하여 생각하고, 그것을 현실과 대비하여 여러 상을 안고 스스로 질서를 성립시키고 있는 절대적 일자로서의 도의 개념을 설파하였습니다.
시골구석 깡촌에서 짚신을 만들어 겨우 끼니를 해결하는 아주 궁색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뛰어나고 탁월함이 오히려 인생을 망치고 구렁텅이로 떨어지면 자기가 추구하는 세상을 살아 보지 못하고 남을 위해서만 산다고 했습니다. 나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 이점에서는 노자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죠.
그의 책은 대부분 현학적이고 해학, 풍자, 냉소적인 내용으로 다소 어려운 대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명예, 부와 같은 세속적 문제를 초월하려 했으며, 부귀를 차지하려는 구차해지거나, 비굴해지는 모습에 대해 가차 없이 시퍼런 칼을 목에 댑니다.
그러니 부인이 죽어도 북치고 노래를 불렀으며, 꿈에서 나비처럼 날아다니지 않나, 높은 자리 주려고 사람 보냈더니 문전 박대하고, 출세하려는 욕망 가득 찬 사람을 똥바가지로 내쫓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장자에게도 옛날이야기였던 요임금이 왕위를 허유에게 물려 주려는 장면에서 허유가 왜 천하를 갖는 그것을 싫어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 임금이 “해와 달이 나왔는데도 관솔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그 빛이 나기에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때맞추어 단비가 내리는데도 오히려 물 긷는 일을 계속한다면 땅을 기름지게 하는 데에 또한 고생하는 거 아닙니까? 선생께서 임금을 맡아주시면 곧 천하게 잘 다스려지게 될 텐데 제가 이직도 임금을 하고 있으니, 제가 임금을 하기에는 부족하기에 당신께서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러자 허유는 ’당신께서 임금으로 있어 천하가 잘 다스려졌고 지금도 잘 가고 있는데 제가 오히려 임금을 대신한다면 내가 앞으로 임금이란 타이틀만 가지라는 거죠?
명분이라는것은 실질의 겉모습인데, 내가 앞으로 겉모습만 나타내면 되는가요?
뱁새가 깊은 숲속에 둥지를 틀어도 의지하는 것은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가 강물을 먹는 것은 물 말라서 먹는 것뿐이오. 허튼소리 작작 하시고 그냥 돌아가 쉬시오.
나에게는 임금이란 자리가 필요 없소.
소, 개, 말을 잡는 푸줏간 사람이 비록 주방일 잘못한다 해도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술잔이나 술통을 뛰어넘어 그 일을 대신하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했습니다.
또 포정(소 잡는 사람)의 소 해체하는 장면에서
포정이 문혜군이란 임금을 위해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데 포정이 칼을 들고 그의 손, 어깨, 발, 무플을 절묘하게 써 그 자르는 소리가 척척 나는 것이 마치 음악 소리 듣는 듯 박자가 고르게 됩니다.
그 옆에서 구경하던 임금이 ‘야 정말 기가 막히네.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 있나?’ 하자,
포정이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해체할 적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체의 소가 아닌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3년쯤 지나고 전체의 소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지금은 마음속으로 소를 보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적인 지식은 작동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칼을 움직이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뼈마디를 볼 수 있고, 뼈 사이가 큰 공간이 보이며 그 사이로 칼을 움직여 뼈에 붙은 살을 칼이 지나면서 조금도 칼이 상하지 않게 됩니다. 기술이 좋은 백정은 칼을 자주 바꾸는데, 그것은 살과 뼈를 구분하지 못해서 칼이 뼈에 닿아 상하게 되어 매번 칼을 바꾸게 됩니다.
제가 지닌 칼은 19년이 지났는데도, 또 소를 수천 마리 잡았는데도 보시면 지금 새로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소의 뼈마디는 칼 두께보다도 틈이 커 칼을 넣으면 칼날을 놀리는데 공간이 충분히 남습니다.
이 때문에 칼날이 무사해서 마치 숫돌에서 새로 갈아 낸듯합니다.
그렇지만 뼈와 자르기 힘든 힘줄 사이에 칼이 다다르면 온 정성을 다하여 아주 미묘하게 움직여 잘라냅니다.
그 순간 살덩이가 땅으로 떨어지면 칼을 잡고 사방을 돌아보며 잘되었다 싶으면 칼을 칼집에 넣어 잘 간직합니다. 라고 했더니 임금 문혜군은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우화는 자신의 마음과 정신상태의 몰입과 그 몰입을 만들어 경지에 오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은 당낭당거철 즉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 또는 사마귀가 수레에 맞선다는 권력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처신에 대하여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큰 힘을 가진 상대에게 덤비는 무모함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고, 자기를 압도하는 상대에게 덤빌 정도로 용맹함을 존경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뜻은 후자의 의미입니다.
본문에는 ’당신은 사마귀를 알지 못합니까? 사마귀는 앞발을 치켜세우고 수레바퀴 앞에서 자신이 도저히 막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수레를 막습니다. 이것을 보면 자신이 훌륭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경계하고 삼가시길…. 자신의 훌륭함을 뽐내면서 남을 거스르면 위태롭게 됩니다.
또 당신은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을 알지 못합니까?
살아 있는 것을 함부로 주지 않는 이유는 호랑이가 그것을 죽이려고 성낼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또 먹이를 통째로 주는 않는 이유는 그것을 찢고 성낼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는 배고픔과 배부름에 맞게 적당히 음식을 고르게 주어 호랑이의 성내는 마음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호랑이가 사람과 다른 부류이지만 자신을 기르는 자를 잘 따르는 이유는 기르는 자가 그의 본성에 잘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호랑이가 기르는 자를 죽이는 것은 호랑이의 본성을 기르는 자가 어겼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호랑이와 같은 부류입니다.
장석이란 자가 어느 땅을 지나가다 아주 엄청나게 큰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를 보려는 자들이 시장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러자 장석의 제자가 장석에게 ‘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큰 나무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스승님은 나무를 본 척도 않고 지나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죠?’
그러자 장석은 ‘ 그냥 두어라, 그 나무는 말하지 말라, 쓸모없는 나무이니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과 덧널을 만들면 빨리 썩고, 그릇을 만들면 쉽게 뽀게 진다. 문짝을 만들면 진액이 흘러나오고, 기둥을 만들어 좀먹는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나무이니 이렇게 크게 되었단다.
그리고 지나쳐 와서 저녁에 잠을 자는 데 꿈에 그 나무가 나타나서 ’그대는 나를 어떤 것과 견주려 하는가? 나를 문채가 있는 나무와 비교하려는가? 아가위나무, 동백나무, 귤나무, 유자나무는 과일이 열리는 나무로 과실이 익으면 잡아당겨 뜯게 되어 못쓰게 되며 큰 가지는 작은 가지는 휘어지지.
이것은 자기 능력으로 자기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격이니, 타고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일찍 죽게 되고, 모든 만물은 이러한 이치와 같지 않은게 없다고 했죠.
‘백 년 된 나무를 쪼개어 제사 지내는 술통을 만들고, 그것을 청색과 황색으로 꾸미는데, 나머지 잘린 것은 버려진다. 만들어진 통과 버려진 나무를 보면 아름다움과 추함에는 차이가 있지만 본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똑같다,
이 본성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다섯 가지가 있다.’
이 글은 노자의 도덕경에서 따 온 것 같죠. 노자의 도덕경 12장 내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田獵 令人心發狂, 難得之貨 令人行妨, 是以聖人 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이 글귀를 해석해 보면 “오색의 찬란한 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의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5가지 좋은 맛은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말을 타고 짐승을 사냥하도록 되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행실을 나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채울 뿐 겉치레를 하지 않도록 해 준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고 해 준다.”】
장자는 생활 철학에 천착한 사람입니다.
나만의 세계를 성실히 추구하였기에, 관계적 유교를 철저히 비판한 이유가 됩니다.
장자는 삶을 부정하는 초월적 이념으로 꿈이라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장자는 노나라에 선표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욕심도 없고, 아주 맑은 물만 먹으며, 이익에 초월한 신선 같은 사람으로 바위굴에서 살았습니다.
70살을 넘었는데도 얼굴은 어린아이와 같이 아주 어리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를 만나 호랑이 밥이 되었습니다.
신선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호랑이 밥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꿈에서 깨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지요
“자면서 꿈을 꿀 때 우리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꿈을 꾸고 있으면서 꿈속에서 어떤 꿈을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서야 자신이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단지 완전히 깨어날 때에만, 우리는 이것이 완전한 꿈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죠.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매우 자세하게 인식하고 있는 척하며,
‘왕이시여!, 하인들아!’ 도무지 고칠 수 없는 정도로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역사로 보는 전략 > 사기 -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기열전 007 병법의 대가 “오기” -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병법 (0) | 2026.07.12 |
|---|---|
| 사기열전 006 사마양저열전 섬김의 지도자 “양저” (0) | 2026.07.10 |
| 사기열전 005 노자한비열전 2 불운의 사나이 법에 능통한 한비자 (0) | 2026.07.09 |
| 사기열전 004 노자한비열전 1 진짜 이해하기 어려운 책 (0) | 2026.07.08 |
| 사기열전 003 관안열전 - 2 안영편 남귤북지(南橘北枳), 귤화위지(橘化爲枳) (0) | 2026.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