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열전에 여러 사람 중 가려 실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마천은 그 사람이 지은 병법을 읽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합니다.
바로 사기 열전 네 번째 소개한 사마양저 편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길래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까요?
우선 사마양저가 어느 나라 누구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마양저는 성은 규(嬀), 이름은 양저(穰苴)입니다.
제환공 때 경대부를 지낸, 경중 또는 공자완, 진완으로도 불린 진(陳)의 공자로서 제나라에 망명하여 환공을 섬겨 경이 되고, 뒤에 전으로 성을 바꾼 전완의 후예입니다.
BC 548년 진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여 빼앗긴 땅 조거읍을 되찾으며, 최저는 장공이 자기 아내와 사통하니 장공을 죽이고 경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 경공 때에 진(晉)나라가 지금의 산동 양곡, 복현읍을 침공해 오고, 북방의 연나라가 황하의 남안 지방을 침범하여 오자 제나라가 연일 패배했기 때문에 경공은 몹시 근심했습니다.
당시 제나라는 긴 내란이 끝나고 경공(景公)이 즉위하였고, 유명한 신하 안영이 경공을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또 진나라(陳)의 망명 귀족인 전 씨의 세력이 급격하게 확대되어, 전 씨의 대두에 기존의 귀족으로부터 질시와 경계가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재상 안영은 양저를 추천하며 “양저는 전씨 첩의 소생이지만 대단한 문장가이고, 용맹 또한 뛰어나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전략가입니다. 원하옵건대 임금께서는 그를 불러 면접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경공은 양저를 불러 전략에 대해 면접을 보니 과연 뛰어난 천재적 지략가임을 알았습니다.
드디어 사마양저를 믿어도 된다고 하였고, 장군으로 임명하려고 맘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사마양저는 “저는 원래 천한 신분으로서, 임금께서 이러한 저를 군사 중에서 선택하여 윗자리로 앉히려 하시지만, 아직 모든 군사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제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권위 또한 없습니다. 그러니 임금의 총애도 받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에게 군사를 감독하도록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경공은 그 청을 허락하여 장가(莊賈)라는 인물을 임명하여 동행키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양저는 총사령관이고, 장가는 그 밑에서 군사를 부리는 사람이 되었죠.
출정에 앞서 사마양저와 장가는 “내일, 정오에서 군문에 모이시오”라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양저는 우선 군영에 가서 해시계를 세우고 물시계를 장치한 다음 장가를 기다렸습니다.
장가는 평소 교만하고 사람이 가벼웠습니다,
그러나 장가는 “고귀한 군대를 통솔하는 것이 자신이다”라고 믿고, 친척이나 고관과 송별의 연회를 마련하여 술을 먹으면서 다음 날 정오가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난 양저는 물시계와 해시계를 엎어버리고 군영을 순시하고 병사를 정돈시키며 군령을 하달했습니다,
군영을 모두 정비하고 날도 저물어 그때야 어슬렁거리며 겨우 장가가 나타났습니다.
사마양저는 어째서 늦었는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장가는 "죄송합니다. 친척과 고관들이 송별회를 열어 주는 까닭에 늦어졌다"라고 했죠.
이것을 들은 사마양저는 “장군이 된 자는 일단 출진을 명령받으면 그날부터 가족을 잊고, 군중에 있어도 친척을 잊고, 군령을 내리게 되면 어버이를 잊어야 하며, 채를 들어 북을 치게 되면 자신을 잊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 적군은 깊이 침입하여 국내가 소란하고, 군사는 몸에 바람과 비에 노출하여 싸우고 있다.
임금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편히 잠을 못 이루고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르며, 백성들의 목숨이 모두 임금의 한 몸에 매여 있는데, 송별회 때문에 출진이 늦는 것이 무슨 일인가!!” 라고 격노하였습니다.
양저는 군법에 처리하는 법무관을 불러 “군법에 시간을 어기면 어떤 죄를 묻는가?”
군무관이 “참형입니다”
그러자 장가는 두려워서 종자를 시켜 말을 타고 가 경공에게 고하여 구해달라고 청을 넣었습니다.
그 종자가 돌아오기 전에 사마양저는 장가를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병사들은 긴장되어, 군대의 규율은 엄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종자가 돌아와서 경공를 사면하라는 명령장을 내밀며 장가를 용서해 달라고 말했지만,
“장군이 군중에 있을 때는 비록 주공의 명령이든지 받지 않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종자가 말을 달려 군영으로 달려오자, 양저는 군무관에게 물었습니다.
“군영 속에서 말을 달리는 것은 허락되어 있지 않다. 지금 종자는 군영 속에서 말을 달렸는데 그 죄는 무엇으로 다스리는가?”
“참형에 해당합니다. ” 하고 대답하자 양저는 “임금의 사자는 죽이는 법이 아니야.”
그에 해당하는 법을 적용합니다. 그 대신 말을 모는 마부를 죽여 모든 군사에게 자초지종을 알리며 임금에게 출정을 보고하고, 비로소 출전합니다.
사마양저는, 숙소를 군사들과 함께하고, 모든 먹는 것도 같이 먹고, 항상 병사와 행동하고, 식사도 같이하였고 약한 자에게도 상냥하게 대했습니다. 자기 월급을 털어 모든 사졸에게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3일 만에 병사들의 마음을 얻자, 병사들은 앞다투어 전선으로 나아가려 하고, 누구라도 불타는 병사들이 되었다. 그야말로 투지가 하늘을 찌를듯하여 전쟁의 승리는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성심을 다하여 나의 처지를 알아주고, 내 맘을 읽어 주면 누구나 상대방에 대해 몸을 바쳐서 일하려고 합니다. 더 높이 있는 자가 정성을 다해 아래로 향하면 향하는 만큼 사람들이 알아줍니다.
요즈음 세태는 자기가 바라면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알아주면 상대방 또한 잠시만 하는 척하다가 그게 사라지면 되돌아서게 됩니다. 이러한 인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 결과, 사마양저는 병사에게 신뢰받아 다친 부상병이라도 출진하고 싶으면 신청했습니다.
이 사건을 들은 진(晉)나라 군사가 싸워봤자 자기가 질 것 같으니, 본국으로 돌아가고, 연(燕)나라 군사도 황하는 건너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기세를 틈타 사마양저는 추격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모두 회복하였다. 귀환에 앞서 대오를 정비하고, 임금에 충성 맹세를 시킨 다음 도읍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 경공은 대부들과 함께 교외까지 마중하여 출정을 위로하고 개선의 예로 칭찬하였고 사마양저를 대사마에 임명했죠.
그 뒤로 양저는 사마양저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씨는 날로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를 가나 능력이 없는 기회주의자는 출세를 위해 아부하거나 남을 헐뜯어 출세하려는 쥐 새끼 같은 세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던 출세하려는 욕심으로 모든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갈등의 씨앗은 그들이 만들어 냅니다.
아니나 달리 얼마 뒤 귀족 포씨(鮑氏), 고씨(高氏), 국씨(國氏)라는 놈들이 사마양저를 헐뜯게 됩니다.
경공은 사마양저를 어쩔 수 없어 관직에서 해임하였고, 그 후 사마양저는 병이 들어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이 일로 양저의 친척 전걸과 전표는 고씨와 국씨 일족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 전상이 간공을 죽였을 때, 고씨·국씨 일족을 모두 죽였습니다.
전상의 증손자 전화에 이르러 자립하였고 그 손자 전인는 제나라 위왕이 되었습니다.
강태공이 봉건 제후가 되어 받은 분봉 지역 제나라는 지금까지 강 씨로 내려오다 전 씨로 바뀐 계기가 되었죠,
그 옛날 잘 나가던 제환공 시절 관중이 예견했던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제환공은 숨을 헐떡거리며 저세상 문 앞에 있던 안영에게 물었던 일이 드디어 터지게 된 것입니다.
BC 539년 안영이 진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숙향이란 사람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안영은 숙향에게 ‘ 제나라의 정권은 결국 전 씨에게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예견했죠.
BC 490년 경공이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리고 애첩의 자식을 태자로 봉하게 됩니다.
당시 진(陳)나라에서 망명하여 들어온 전 씨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인망을 두껍게 했던 시절이었죠.
그 후도 전 씨 세력이 축소되지 않고, 결국 강씨(姜氏)들의 공위를 찬탈하였습니다.
BC 481년 전상이 간공을 죽이고 ‘오’라는 경공의 동생을 세워 평공이라 하고, 그 위에 ‘상’이라는 최고의 벼슬에 앉아 제나라를 통치하게 됩니다. 제 평공은 BC477년 사망하게 됩니다.
춘추시대(BC770-403)가 거의 막을 내리던 즈음 강씨의 제나라가 결국 전 씨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제 위왕 시절에는 군사를 움직여 위력을 과시할 적에는 사마양저의 병법에 따랐습니다. 그러나 주변 나라들은 전 씨 제나라에 엎드려 절하고, 복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위왕은 자기 선조 사마양저의 병법을 연구하여 더욱더 발전시키라고 했죠. 그래서 생긴 게 “사마양저 병법”이란 책이 저술되게 됩니다.
이것이 후에 《사마법》이라는 병법서입니다.
사마천도 사마양저 병법을 한번 읽어 본 모양입니다.
그는 이 책을 보고 그 전개 방법이 워낙 넓고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어 그 옛날 하, 은, 주 시절의 전쟁도 이처럼 심오함을 담고 있지 않았고, 문장도 사실과는 다르게 넘쳐 기술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마양저가 조그마한 제나라를 위해 군사를 움직이는데 어느결에 이 병법을 적용했다는 거죠.
그래서 사마천은 사마병법은 수많은 서적이 있기에 그것을 논하지 않는다고만 했죠.
사마양저는 사마천이 사기 열전에서 소개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사마천은 사마양저의 정성에서 우러나오는 용병술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마천 사기 열전의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해설서들에서는 사마양저의 이러한 기록이 언제 사람인지 왕들의 재위 연도도 없으며 그저 사건만을 기술한 까닭에, 이 사람들이 언제쯤 인물들인가에 대해 알 수 없었지만, 사기 표의 제나라 관련 몇 가지 이벤트를 통해 시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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