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전략/사기 - 사기열전

사기열전 005 노자한비열전 2 불운의 사나이 법에 능통한 한비자

BoomSoon Dream 2026. 7. 9. 10:18

 

한비(韓非,기원전 280? ~기원전 233) 한비자를 저술한 전국 시대 중국의 정치철학자, 사상가, 작가입니다.

때는 전국시대였죠. 중원의 대국인 진()이 내란과 외세에 한, , 조나라로 분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진나라 나머지 땅을 (), , , 위 등이 차지하고 이들을 전국칠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 진() 나라는 법치 주의를 중용하여 중앙집권제를 효율적으로 채용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강대국이 되었고 다른 나라를 얕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나라는 가장 약한 나라였죠.

나라 땅조차 작고, 서쪽은 진, 동쪽은 제, 북쪽은 위나라 남쪽은 초나라에 둘러 쌓인 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나라들 여럿이 강한 나라와 싸움할 때면 한나라가 가장 피해를 입었고,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할 때는 그 선봉이 되어 남의 나라를 위해 피 터지게 싸웠습니다.

한나라가 풍전등화처럼 나라의 처지가 그러니 한비는 나라를 구한다는 일심에 왕에게 건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한나라의 왕족이었던 사람이 한비입니다.

그는 기원전 3세기 초에 한나라 왕 안의 아들 중에서도 어머니의 신분이 낮은 후궁의 소생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를 서공자 출신이라 하였습니다.

 

한비는 명분, 실리, 법 등의 학설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한비의 핵심 사상은 법과 술입니다.

이 사람은 현명하고 명철했으나 말을 더듬는 자기 신체의 불구를 극복하지 못해 출세하지 못하고 불운하게 모함을 받아 죽은 사람입니다.

한비의 생애는 불분명합니다마는 사마천의 사기열전 제3편 노자한비자 열전에 지극히 적은 분량으로 실린 사람으로 중앙집권적 제국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창도한 법가 이론의 집대성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비자는 어려서 법가 사상가인 이사와 함께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하였습니다.

이사는 말주변이 뛰어났지만 한비자는 그렇지 못했죠.

하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한비자가 이사보다는 훨씬 뛰어났습니다.

한비자는 법가 외에도 유가, 도가, 묵가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법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한나라가 문화가 떨어지고 세가 기우는 때여서 한비자는 여러 가지 방법을 왕에게 제안하였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먼저 순자라는 학자가 한비자와 이사를 가르치던 시절은 어땠을까요?

한편 순자는 제나라가 잘나갔던 제환공 시절에 학문의 전당으로 직하학당이란 국가에서 출원한 일종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후기 선생이었습니다.

제나라 후기 민공이란 왕 때 이 제민왕은 전쟁을 좋아하여 여기저기 들쑤시고 포학하기 이를 때없는 왕이었습니다.

이러니까 주변 5 국가가 연합하여 제민왕을 때려 잡습니다.

산동 반도의 제나라는 70여개의 성 가운데 겨우 2개 성만 남게 됩니다.

5개 국가 중 연나라가 수도 임치까지 공격해 들어와 제나라의 보물을 모조리 가져가고 궁실은 물론이고 종묘까지 불태우게 됩니다.

이런 전쟁통에 직하학당도 무사할 수는 없었지요.

5년 동안 연나라가 임치를 점령했는데 이 5년 동안 직하학 학생은 물론이고 70여명 되는 선생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이때 순자는 일갈을 합니다.

이렇게 멸망한 이유는 예와 의를 따르지 않고 권모술수를 부렸던 것이 화근이다.’ 하면서 제민왕이 너무 욕심을 부리고, 성공과 이익에만 급급하였고, 겉으로만 강하고 실속은 없었기에, 인자가 그의 곁을 떠나고 아첨 무리배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바뀌어 제나라에 양왕이란 왕이 집권하게 됩니다.

 

사마천 사기맹자 순경열전에 전병(직하선생)과 같은 이들이 모두 죽었으니 제양왕때 제일 자격을 갖춘 선생이 바로 순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석 자리를 세 번이나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가장 학식이 높고 덕망이 높았던 순자는 세 차례 학궁의 학술 대표자 , 좨주라는 임무를 맡아 운영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순자를 모함하여 순자를 내쫓게 됩니다.

그러자 직하학궁은 주인을 잃어버린 유명무실의 학당이 되어 제나라가 망할 무렵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순자는 나중에 초나라로 가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전국시대 4군자인 초나라 재상 춘신군 황헐에게 발탁되어 난릉 현감으로 봉직하였고, 진나라에 의한 전국통일(BC 221) 전야의 사상계에서 활약했으며, 초나라에서 정치 실무를 담당한 일도 있다고 합니다.

사상적으로는 천의 사상을 발전시킨 자사나 맹자와는 다른 예()에 뛰어났던 유교 계통에 속한다고 합니다.
맹자 등의 유교 사상뿐만 아니라 제자백가로 불리는 전국시대의 다른 학파의 사상까지 비판·섭취하여 유교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사상체계를 수립하게 됩니다

순자는 자기 이름으로 순자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제자백가가 벌 떼처럼 등장하던 시대에 공자, 맹자, 노자, 장차, 묵자, 순자, 한비자처럼 후세에 책이 전해이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가운데 누가 등용되지 못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반면 등용되었던 평민 출신의 재상들 가운데 각고의 노력으로 학문에 힘썼던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그들 중 어느 하나 학식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그러니 그들 중 어느 누가 책을 지어 세상에 전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사와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였습니다.

이 제자 중 이사의 재능과 학문은 한비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사는 등용되었기 때문에 책을 쓰지 않았을 뿐이고, 만일 한비가 등용되었다면 불운한 인생은 없었겠죠.

당시 나라마다 객경이란 신분이 있었습니다.

이 객경은 전국 시기에 각 나라들의 인재를 돈으로 초빙하여 임용하기 위한 일종의 관직이었습니다.

그중 객경이 가장 성행했던 나라가 바로 진시황의 진나라였죠,

이때 이사는 객경이었습니다.

일종의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계약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문 직책도 아니고 그나마 아이디어만 내는 형식의 벼슬로 국가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그것만 해결하는 직책이었습니다,

이사는 처음에 진나라의 왕(王) 정을 순바닥이 발이 되도록 아첨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그는 등용이 되었죠, 점차 승진하여 승상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런 그가 같이 수학했던 한비자를 추천하게 됩니다.

한비자는 고집도 세고, 학문의 경지가 남달랐던 모양입니다.

자기 스승인 순자와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됩니다.

학문의 세계가 동질성이 있으면서도 좀 다른 양상을 가지게 됩니다.

 

당시 진시황이 왜 한비자를 좋아했을까요?

한비자는 어려서부터 공자를 숭상하였으며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강력한 법질서가 필요하다 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또한 스승 순자의 영향을 받아 노예 제도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였는데 이 때문에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궤변론자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전국 열국의 왕공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일찍이 산으로 들어가 서실을 열고 문하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동문이기도 했던 이사와 절친했던 한비는 이사를 통해 진왕 영정을 소개받게 되고, 그의 실력에 매료된 진왕 정은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 노력하였죠.

한비자는 진시황이 존경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한비자가 쓴 고분과 오두를 진시황이 보고 크게 감명받아 이 자를 한번 만나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는 가차 없이 의견을 적어 왕에게 올렸으나 한나라 왕은 채택을 하지 않았죠.

그러나 진나라의 왕은 그렇지가 않고 그 글을 읽고 한비자를 흠모하게 됩니다.

 

한비자는 어떻게 죽었을까요?

맨날 고래 싸움에서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된 한나라에서는 지금껏 진나라를 잘 섬기고 왔으니 제발 멸망시키지 말라고 빌어야 했죠. 이런 내용을 한비자 존한편에 쓰고 구구절절 한나라를 살려 달라고 빕니다.

한나라가 진나라를 섬겨 온 지 삼십 여년 동안 나아가서는 방패가 되고, 들어와서는 깔깨가 되었습니다.

진나라가 날쌘 군사를 보내 남의 나라 땅을 빼앗을 때는 한나라가 이를 도와 줌으로써 한나라는 천하의 원수를 감당해야 했고, 그 공로는 진나라가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는 공물을 바쳤으니 이 나라는 진나라 한 개 고을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잔꾀가 많은 이사는 진시황에게 한비자를 얻고 싶다면 한나라를 공격하면 한비자가 사신으로 올 것이고 그때 회유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진시황은 한나라를 공격하게 되고 한비자가 사신으로 와 한나라를 공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정은 한비를 만나보고 그에게 호감을 가졌으나, 말 더듬이의 언변이 형편없다고 판단하여 자리를 물리게 됩니다.

사신으로 가서 왕을 알현하고 나오는 한비자는 우울했습니다.

몇일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자, 동문수학했던 이사가 왕이 한비자를 등용하면 자기가 밀릴 것을 알고 음모을 꾸미기 시작합니다.

대왕이시어 한비는 한나라 공자의 말류입니다. 이제 상감께서 제후 병합의 대망을 이루고자 하시는 이 마당에 한비를 등용하더라도 나중에는 한나라을 위해 계략을 꾸밀게 분명하고 진나라를 위해 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등용하지 마시고 오랫동안 머물게 하였다가 돌려보내시면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하니, 가혹한 법을 적용하여 죽이는 것이 올을 줄 아뢰오라는 이사의 음모였습니다.

 

그 음모에 한비자는 투옥당했고, 결국 음독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49세였습니다. 또 한 명의 천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죠.

죽이기 아깝다고 여긴 진시황은 서둘러 사람을 보냈으나 이미 자살한 뒤였다고 합니다.

한비자의 법가 서적인 [한비자]는 한비자와 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총 55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비자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오두], [현학], [고분]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절대적 군주권의 수립 및 현실에서 출발하는 국가 전체의 질서 정립이라는 문제 의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비는 청렴 강직한 인물이 사악한 간신 때문에 등용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했으며, 왕이 나라를 세우고 성공과 실패, 득실을 고려하여 고분, 오두, 내외저, 세림, 세난편 등 10 여 만 자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한비가 유세의 곤란함을 알고 지은 기가 막힌 세난편은 완벽한 글인데도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고, 한나라에서도 출세를 못하였으며, 사신으로 간 진나라에서 같이 공부한 이사란 놈이 음모를 꾸며 죽였으니 참으로 불운한 사람입니다.

 

이 세난편은 기승전결로 아주 명료하게 저술하였기에 곧잘 사례를 들어 21세기에도 지식층에서 활용되는 빈도가 높습니다. 이 세난편은 유세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문제에 대한 문제 해결책을 논술한 다음 사례를 들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심리적 갈등과 해소에 대한 한 편의 논문을 읽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옵니다.

문제를 제기한 면에서는 유세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따져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고, 파헤치는 방법도 날카롭고 파격적이며 그 사례 또한 섬뜩합니다.

 

유세의 문제점이 무엇일까?

무릇 유세의 곤란이란 나의 지식으로써 상대방을 설득하기 곤란한 것이 아니다.

또 나의 말재주에 따라 상대방이 내 뜻을 철저히 하거나 자기의 말한 바를 종횡무진 다 말하기가 곤란한 것도 아니다. 대체로 유세의 곤란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통찰하여 상대방의 마음에 나의 의도를 잘 맞추어 끼우는 일의 어려움을 가리킨다. 상대방이 명예욕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 이익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속물이라고 비웃을 것이며 경원당하고 만다.

상대방이 이익을 바랄 때 명예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몰상식하고 세상사에 어둡다고 하여 소용없는 사람이란 인정을 받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대방이 내심 이익을 바라면서 표면으로는 명예를 바랄 때, 그런 사람에게 명예를 말하면 표면으로는 좋은 체하면서도 내심 꺼리게 된다.

만약 이런 사람들에게 이익에 관해 이야기하면 내심 은근히 그 설명을 채용하면서도 표면으로는 그것을 경원하게 된다. 그런 기미를 잘 알아야 두어야 한다.

무릇 일이라는 것은 비밀을 유지함으로써 성취하고 말의 누설로 실패한다.

그렇지만 유세하는 사람은 어쨌든 군주가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언급할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은 생명이 위험하다.

또 유세하는 사람이 귀인 중에서 과실의 단서를 잡아내어 명백한 정론을 펴면서 그 허점을 추궁한다고 하면 역시 그 생명이 위험하다. 유세하는 사람이 아직 군주의 두터운 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에 함축이 있는 지혜를 번득이는 것은, 그 말이 효과를 올리고 공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별로 덕을 세운 것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성과도 없고, 실패한다면 엉뚱한 일까지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런 사람도 역시 생명이 위험하게 된다. 대체로 귀인이 남에게서 계교를 얻고 그로 인하여 자기의 공을 세우고자 할 때, 유세하는 사람의 의도를 알아차린 다음에는 그 유세자의 생명은 위험하다.
군주가 겉으로는 딴 일을 하는 체하면서 안으로는 다른 일을 하려고 생각할 때, 유세하는 사람의 생명은 위험하다. 군주에 대하여 도저히 손을 미치지 못할 일을 강요하거나, 호랑이를 타고 가는 위세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을 막으려 해도 그 생명은 위험하다.

그러므로 군주와 함께 명군, 현군을 논하면 속으로는 군주를 비방하는 것으로 의심을 받고 미천한 자를 논하면 군주를 파는 것으로 오해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사람을 논하면 이로써 군주를 시험하려는 줄로 오해받고, 말을 꾸미지 않고 생략해 단적으로 표현하면 무식한 사람이라 하여 업신여김을 받으며, 이런저런 학설을 인용하면서 말을 많이 하면 오해받는다. 일에 순응하여 의견을 말하면 겁쟁이로서 말을 모두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고, 일의 앞뒤를 재어 이러니저러니 따져 말하면 방자하고 예의가 없다고 한다. 이것이 유세의 곤란한 이유이니 유념해 두어야 할 점들이다.

 

다음 위에서 말한 문제점들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대체로 유세의 요령은 상대방 군주의 긍지를 만족시키고 그가 부끄러워하는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교를 끝내주는 계책이라고 자신 있어 하거든 그 결점을 지적하지 말 것이며, 자신의 결단을 용감한 줄 알고 있으면 그 결단을 수긍하여 항거하거나 노하게 하지 말며, 또 스스로 자부심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들어 그 용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에 군주가 계획하는 일과 같은 계획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칭찬하여 주고, 어떤 사람이 군주가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하는 일을 다치게 하지 말 것이며 군주와 같은 실패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고 두둔해 줄 일이다.

큰 충성이란 순수한 것으로 다른 뜻이 없으니, 군주에게 거슬림이 없어야 하며, 군주로 하여금 느껴서 깨닫게 해야 하므로 배격함이 없어야 하고, 그러한 범위 안에서 자기 능력과 지식을 발휘할 일이다.

이것이 군주에게 신임받고 의심을 받지 지 않는 일이 되며, 자기의 말재주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임금의 은정이 두껍게 된 다음에는 깊이 들어가 계획을 실천해도 의심을 받지 않을 것이며 분명히 이해를 타산하여 자신의 공적을 세우고 옳고 그름을 바로 말해서 자기 몸에 비단으로 장식한다. 이처럼 해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손상당하지 않는 것이 유세의 성공이다.

 

다음은 역사 속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사례 1

은 탕왕은 신야라는 곳에서 이윤을 맞아 재상을 삼음으로써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은나라를 세울 수 있었으며, 탕은 그를 높여 불러 아형이라 했다. 이윤은 요리사였다. 마치 진나라 목공의 재상 백리해가 포로였던 것도 이런 수단으로 하여 군주에게 임용의 길을 구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처럼 몸을 수고롭게 하여 천한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한 것을 본다면 재능이 있는 인사라 할 지라도 그런 수고로운 일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다.

사례 2

송나라에 어떤 부자가 살고 있었다. 비가 내려 토담이 무너졌을 때 그 아들이 말했다. ‘다시 고쳐 쌓지 않으면 머지않아 도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웃집 주인도 똑같은 말로 충고해 주었다.

밤이 되자 과연 도난을 당하여 많은 재물을 잃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아들은 현명하다 했으며, 이웃집 주인에게는 의심을 품었다.

사례 3

정나라의 무공이 호 나라를 치려고 자기 딸을 호의 임금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런 다음 여러 신하를 향하여 이렇게 물었다. ‘출병하고자 하는데 누구를 쳐야 한단 말인가?’

이때 관기사란 자가 말했다. ‘호를 쳐야 합니다’ 관기사는 그날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정의 무공은 ‘호는 형제와 같은 의가 있는 나라이다. 그대가 호를 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호의 임금은 그런 말들을 전해 듣자, 정나라는 자기 나라와 친한 나라로 판단하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 틈을 노려 정나라는 호로 쳐들어가 나라를 정벌하였다.

이 두 사람이 말한 것은 지혜란 점에서 본다면 타당했건만 한 놈은 죽고 한 놈은 적어도 혐의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은 지혜를 내는 일이 곤란한 것이 아니라 지혜를 쓰는 방법이 곤란한 것이다.

사례 4

옛날 미자하란 사나이가 위 나라의 임금에게 총애받았다.

위나라 법률로는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다리를 자르는 형벌로 처하게 되었다.

미자하는 어머니가 병이 나자 어떤 사람이 밤에 미하자에게 알려 주었다,

미자하는 임금을 속이고 몰래 수레를 몰고 집에 다녀왔다.

임금은 그 소리를 듣고 미자하는 현명한 효자이다 했다.

얼마나 효성스러운 일인가? 아무리 어머니 병환이라고는 하지만 월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녀왔을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임금과 미자하는 과수원에서 함께 놀았다. 미자하가 복숭아를 한입 베어 먹어보니 그 맛이 달고 맛있어 먹던 것을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이 ‘얼마나 애정스러운 일인가? 자기가 입에 대었다는 사실도 잊고 그 맛있는 것을 주다니’

시간이 지나 미자하도 늙고 임금의 사랑도 식은 다음 어떤 일로 미자하는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미자하는 지난날, 나를 속이고 임금의 수레를 탔으며 또 일찍이 제가 먹던 것을 건방지게 나에게 줘서 먹게 했다. 괘씸한 녀석이다.’

미자하의 행위는 시종 변함이 있을 수 없건만 처음에는 현명하단 소리를, 나중엔 죄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은 임금의 심경에 변화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주군에게 사랑을 받고 있을 때는 지혜가 주군의 맘에 들어 점점 친해지지만, 반대로 미움을 받을 때는 죄를 범한다고 해서 더욱 성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언 유세를 하는 선비는 주군의 애증 정도를 통찰한 다음에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이라고 하는 그 파충은 길을 들이면 그 등 뒤에도 탈 수 있지만 그 등줄기에 지름이 한자나 되는 역린이 있어 사람이 이것에 닿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임금에게도 이러한 역린이 있다. 유세하는 사람으로서 임금의 역린에 닿지만 않는다면 우선 성공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런 책을 들고 진시황에게 바쳤습니다.

진시황은 이 책을 읽고 “아! 이 책의 저자와 만나서 사귈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사마천의 서평 한 줄을 보면 ‘사람이 사는 논리를 법률로 재단하기를 먹줄을 그어 놓은 것과 같게 해서 사정을 절실하게 하고, 곧음과 구부러짐을 명확하게 했는데 그 결과는 잔혹하여 인간미가 없다. 그러면서 노자, 장자, 순자들의 철학 세계를 들어 그 중 노자의 것이 깊이가 있다’라고 평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