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BC 381년)는 산동성 하택시 차오현 출생으로 중국 전국시대 때 군대를 움직여 싸움하는데 탁월했던 사람입니다. 오죽했으면 공자 같은 석학에 붙이는 “자”를 붙여 높여 불렀을까?
그래서 기록된 일생과는 달리 '오자(吳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와 관련된 저작으로 병법이 전해지며, 동양의 고전 중에서는 손자병법과 비견되는 가장 대표적인 병법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본래 위나라 출신이었습니다.
출세를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공자의 제자 증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나라로 가서 취직했습니다.
마침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하였죠.
그런데 노나라 임금이 장군을 삼고 싶지만, 오기의 부인이 제나라 사람이어서 노나라에서 신임을 얻기가 어려웠죠.
그러니까 오기는 자기 부인을 죽입니다.
이 살인의 의미는 제나라와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노나라 장군이 됩니다.
출세의 야욕이 너무나도 처절했으며, 그만큼 성격이 난폭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나라 군대와 만나서 막상 싸움이 들어가면 그 누구보다도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마침내 제나라 군대를 제압하고 승리합니다.
그러나 그런 오기의 자질에 대해 노나라 많은 사람들은 손가락질합니다.
“오기란 사나이는 시기심이 강하고 잔인한 사람이야.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집이 갑부였는데 벼슬을 얻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탕진하고 말았지. 마을 사람들이 이를 비웃자, 자기를 조롱했다고 생각하여 30여 명을 죽이고 동쪽으로 도망하여 노나라로 갔지. 그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기 팔꿈치를 깨물며 ‘대상이나 재상이 되지 못하는 한, 두 번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겠다’라면서 맹세했다고 해. 그러고 나서 증자한테 가서 배우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버리고 다시 증자에게 돌아오지 않으니, 증자는 의리 없는 박정한 놈이라고 내치게 되지. 그 후 오기는 노나라에 와서 병법을 배워 노나라 임금을 섬기게 된 거야. 그런데 노나라 임금이 오기를 의심하고 중책을 맡기지 않으니 서슴지 않고 자기 부인을 죽이게 된 것이지. 그리고 임금에게 장군의 자리를 달라고 했어. 조그만 소국 노나라가 잘 싸운다는 소식이 옆 강국들에 들어가면 앞다투어 노나라를 칠 것이고,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의 나라인데 만약 노나라에서 오기를 등용하게 되면 위나라를 배신하게 되니 노나라 임금은 주저주저했던 거지.”
이러한 행적을 미루어 노나라 임금은 오기를 의심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인하여 군주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게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비자에서는 오기가 노나라에서 도망한 이유를 다른 기록이 있지만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노나라의 대부인 계손씨가 노나라 군주를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는 계기가 됩니다.
당시 오기는 노나라에서 말단 공무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오기에게 "지금 계손씨가 막 피를 보이고 있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라며 말하자 권력의 끈을 잡고 있던 오기는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
오기는 노나라를 떠나 진나라(晉)로 가버리고 말았다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진나라란, 당시의 시기상으로 보건대 곧 위나라(魏)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기록 외에는 계손씨에게 살해당했다는 노나라 군주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오기가 노나라를 떠나게 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한비자 기록에는 오기가 고향을 떠나게 된 정황에 대하여 다른 기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오기는 본래 위(衛)나라 좌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오기가 아내에게 띠를 짜도록 하였는데 그 폭이 법으로 정해진 치수보다 좁았다. 이에 오기가 아내에게 띠를 고치도록 하자 아내는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띠를 고친 후에도 여전히 그 폭이 치수와 맞지 않았다. 오기가 화를 내자 아내는 처음에 베를 짤 때 이미 그 정도 치수의 날실을 넣었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오기는 아내와 이혼해 버리고 말았다. 오기의 아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그 오빠가 이를 말리며 말하기를, "오기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법을 집행하는 것은 만승(萬乘)의 나라와 더불어 공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데, 먼저 처첩을 대상으로 법을 실천한 후 밖에서 이루려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돌아갈 생각은 그만두어라."라 하였다. 이혼당한 오기의 아내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위나라 군주의 신임을 받는 총신이었다. 아내의 동생은 군주의 힘을 빌려 오기에게 다시 아내를 받아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오기는 그대로 위나라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오기는 위나라로 옮겨 야망을 펼칠까, 생각합니다.
마침 위나라에는 문후(제위 BC 424년 – BC 386년)라는 임금이 현명하다는 소식을 들은 오기는 위나라로 갑니다.
위문후는 이극이란 신하에게 “오기는 어떤 사람인가?” 하자 이극은 “오기는 탐욕스럽고 호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싸움 판에 들어서면 아마도 사마양저도 그를 따르지 못합니다.”
위 문후는 그래도 오기를 장군으로 기용하게 됩니다.
오기는 승승장구합니다.
싸울 때마다 승리하게 됩니다.
서하에 부임한 오기가 진나라를 상대로 벌인 전쟁은 그 시기가 불분명하고 기록이 구체적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기·한비자·오자병법·여씨춘추 등에 단편적인 일화들만이 전해질 뿐이며 그 시기조차 불명확합니다.
다만 위 문후 시대의 위나라는 진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일이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여기에 오기가 개입한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사기표 육국연표에는 BC 413년, 진나라가 위나라와 더불어 싸워서 정하에서 이를 물리쳤습니다.
BC 412년, 위 문후의 아들인 공자 격이 진나라를 공격하여 변방을 포위하고 그 인민들을 몰아냈으며, BC 409년, 위나라는 진나라를 정벌하고 임진· 원리에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BC 408년, 위나라는 진나라를 정벌하여 정에 이르렀고, 돌아와서는 낙음·함양에 성을 쌓았고, BC 401년,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양호에 이르렀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오기는 진나라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오기는 3년에 걸쳐 유공자에게 포상을 내리고 전사자들의 가족을 위로하는 정책을 펼쳐 군대의 사기를 높였으며 마침내 서하를 침공해 온 진나라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습니다.
뒤이어 오기는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진나라의 50만 군사와 싸워 또다시 대승을 거두게 되죠.
장군으로서 사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누울때도 자리를 깔지 않고 행군할 때도 수레를 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먹을 양식을 자기가 가지고 다는 등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언제나 병졸과 고락을 함께함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얻었으며 이 일화에서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였습니다.
종기(疽)가 생긴 병졸을 오기는 직접 빨아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병졸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슬퍼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죠 “당신의 아들은 일개 병졸인데 대장군이 친히 고쳐주려고 고름을 빨았는데 기쁘지 않으시고 어찌 울기만 하십니까?”
그 병졸 어머니가 슬피 운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날 날 내 남편이 종기로 고생할 때 오기 장군이 고름을 빨아준 적이 있습니다. 그 일에 감격한 남편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진격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전사하고 말았죠. 그런데 또 내 아들의 종기를 빨아 주었다. 하니 자식을 또 죽을 게 아니오.” 위나라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할 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공평하여 유능한 사람이라면 기용하여 병졸들에게 인기가 탁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게, 사람은 오래 사귀어야 하는데 판단이 좀 이르지 않았나 봅니다.
당시에 무장인 오기가 유생의 복장을 갖추고는 병법을 논하고자 위 문후를 알현하곤 했습니다.
위 문후는 일부러 오기의 앞에서 거짓으로 "과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소."라 말하며 속였습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오기는 이미 위 문후가 몰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챘죠.
그러면서 오기는 전쟁의 승패와 병법에 대해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가 무르익자, 위 문공은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 경청하게 됩니다.
오기의 식견과 언변에 감탄한 위 문후는 친히 자리를 마련하여 자기 부인으로 하여금 오기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베풀었습니다.
위 문후는 오기를 부쩍 신입하게 됩니다.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청렴하며 공정하여 병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황하 서쪽에 위치한 진나라와의 국경지대인 서하의 태수로 삼게 됩니다.
이후 오기는 제후국들과 76회에 달하는 싸움을 치러서 64회의 대승을 거두었고 나머지 싸움도 비겼다고 전한다.
오기의 공로로 인하여 위나라는 사방으로 1천 리에 달하는 영토를 얻었다.
BC 386년, 위 문후가 죽고 그 아들인 위 무후가 즉위하게 됩니다.
어느날은 무후가 서하에서 배를 타고 노닐다가 그 견고한 산의 험준한 형세를 살펴보고는 "나라의 보배"라며 감탄하였습니다. 그러자 마침 무후의 곁에 있던 오기가 “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망에 있는 것이지 험준한 산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삼묘씨는 동정으로 왼쪽으로 끼고, 팽려라는 곳을 오른쪽에 끼고 있었지만, 임금이 덕을 쌓지 못하여 우에게 망했습니다. 또 하 나라의 걸왕이 도읍한 곳은 하, 제를 왼쪽에 끼고 태, 화를 오른쪽에 두고 이 궐이 그 남쪽에 있으며 양장이란 곳이 북쪽에 위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잘하지 못하여 은나라 탕왕에게 멸망 당했습니다. 그 후 은나라는 주왕은 맹문이란 곳을 왼쪽에, 태행을 오른쪽에 두고, 북쪽에는 상산, 남쪽에는 대하가 위치했건만 그 나라 또한 정치를 잘못하여 주무왕에게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어디에 있더라도 정치를 덕으로 해야만 하고, 만약 이 배에서도 잘못하면 모든 선원이 적이 되어 달려들 것입니다.” 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고 맞는 말이었죠. 그래서 계속해서 서하의 태수를 맡기게 됩니다.
오기가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어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그런데 새로 재상이 임명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름이 ‘전문’이란 사람이었죠.
자기가 재상이 될 줄 알았던 오기는 어안이 벙벙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문이란 사람과 함께 술을 한잔하면서 “그대의 공로가 나의 공로와 비교하고 싶은데 괜찮겠소”
그러니까 전문은 OK 합니다.
오기가 “ 3군의 장수로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감히 다른 나라가 위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당신과 나의 능력에서 누가 능력이 뛰어나다고 보시오?”
그러자 전문은 “오기 장군을 제가 어떻게 따르겠소. 훨씬 오기 장군이 뛰어 납니다.”
그러자 오기가 “백관을 통솔하고 나라 곳간을 충실하게 채워 부국을 이루는 점에 있어 당신과 나의 능력은 어떻소”
전문은 “ 그것도 오기 장군이 뛰어 나지요”
하나 더 “서하 태수가 되어 막강한 진이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한, 조나라가 위나라에 바치고 있는 형세를 다루는 점에 있어 누가 능력이 뛰어나오?”
전문이 “그것도 장군이 훨씬 뛰어나지요”
그러자 오기는 “그런 평을 하면서도 나보다 오르게 되었는데 이번 인사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안드시오?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 하자 전문은 “그걸 모르겠소” 하면서 “지금 나라 임금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백성은 불안하고, 지금 임금에 대한 충성심 또한 좋지 않은 시기고, 그러니 내가 재상 자리를 오기 장군께 넘겨야 하오, 아니면 내가 재상 자리에 있는 게 낫겠소?”
오기는 한참을 생각하다 “ 그대가 재상하는 게 나을 것 같소” 했습니다.
그러자 전문은 “이 점이야말로 내가 그대보다 윗자리에 있을 이유가 됩니다.”
오기는 기능적 수행에서는 뛰어나지만, 국가와 임금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이 전문보다 못했던 것입니다.
오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술은 뛰어나지만, 인문학적 소지가 다소 떨어짐을 알게 됩니다.
전문이 일찍 죽게 되어 다음 재상으로는 공숙이란 자가 오르게 됩니다.
전문이 죽은 후에 위나라의 재상이 된 공숙(公叔)은 오기의 공로를 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위나라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공숙은 부하들의 의견에 듣게 됩니다.
부하들은 “ 오기란 자를 쫓아내기란 쉽습니다.
오기는 절조가 굳고 청렴한 사람이지만 명예를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임금에게 ‘오기는 참으로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국이니 옆 진나라는 강하여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신이 생각하옵건대 오기가 우리나라에 머물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점에 상당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후 왕이 어찌하면 좋을까? 하겠지요.
그러면 시험 삼아 공주를 시집보내 보시라고 권유하면 분명 오기는 머물 생각이라면 OK, 떠날 사람이라면 NO 하겠지요. 그리고 부인이신 공주마마에게 상공을 푸대접하라고 짜고, 오기를 초청하여 대접하게 되면 오기의 성격에 공주를 부인으로 맡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기는 무후의 청을 거절하게 되니 역적이 되고 떠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감! 이러면 오기를 내쫓을 수가 있습니다’ ”
그러니까 일부러 위 무후를 찾아가서 오기가 위나라보다 더 강한 진나라에 붙을까 걱정이니, 그에게 위나라의 공주와 혼인할 것을 권유하여 속마음을 떠볼 것을 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위 무후는 오기를 의심하여 더 이상 신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후는 재상을 잘못 두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단지 오기의 잘난 것을 시기 질투하고 있으니 결국은 무후의 왕 자질이 부족했다고 보입니다. 그저 높은 사람이 되면 아첨의 무리보다 쓴소리하는 충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망할 징조가 여기에 있었지요.
그러나 전국책에는 정반대의 스토리로 공숙은 오히려 자신의 공을 오기에게 돌리는 등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어서 이 일화와는 모순되는 면이 있습니다. 또 여씨춘추에서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원인 모를 숙청당했던 정황에 대한 다른 기록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오기가 서하 바깥을 다스리고 있을 때 왕조가 그를 일러바치자, 위 무후가 오기를 불러들였고, 올 게 왔구나!' 하면서 오기는 안문을 지나게 되자 수레를 멈추고서 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수레를 몰던 종이 이를 보고는 오기에게 “제가 무후의 뜻을 보면, 천하를 버리기를 헌신짝과 같이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하를 떠나면서 웬일로 눈물을 흘리십니까?”
그러자 오기가 눈물을 훔치며 "그대는 모른다. 군주께서 나의 뜻을 알아주시어 나에게 능력을 펼치게 하였다면, 서하를 기반으로 왕이 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군주께서 아첨하는 것에 혹하여 나의 뜻을 몰라주시니 서하를 진 나라에게 빼앗길 날이 머지않았다.
위나라는 끝내 작아지고 말 것이다."라 했습니다.
오기는 위 무후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하다가 결국은 초나라로 떠나가게 됩니다.
BC 400년 초나라는 삼진이 초나라를 쳐들어와 승국이란 땅까지 점령당하는 일이 생겼다.
그다음 해 BC 399년 위나라 괵산이 무너져 내려 황하가 막혀 위나라는 수난을 받게 된다.
사기표에 기록할 정도였으니 산이 무너져 황하가 막혔다는 것은 역사상 최고의 자연재해라고 볼 수 있었죠.
그리고 2년 뒤 초나라는 도왕이 BC 401년에 제위에 오르게 된다.
몇 년 후 오기가 초나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초나라 도 왕(제위 BC 401〜BC 380)은 오기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게 굴러들어 온 웬 떡인가 하며 오기가 초나라에 오자마자 곧바로 그를 기용하여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다만 일설에는 오기가 처음 초나라에 와서 1년 동안은 지방 말단직의 직위를 지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재상이 된 오기는 법률을 바로 세우고 명령계통을 체계화하고, 급하지 않은 관직은 없애고, 먼 왕족에게는 봉록을 주지 않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리고 예산 집행에 있어 군사 양성에 주력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다듬었습니다.
오기는 초 도왕에게 초나라의 풍속에 대하여 말하기를, "대신(大臣)들은 지나치게 강하며 봉군들은 지나치게 많은데, 곧 위로는 군주를 핍박하고 아래로는 인민들을 착취하게 됩니다.
이는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고 군대를 약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봉군의 자손으로 3대째가 되면 그 작록을 거두어들이고, 잡다한 관리들의 녹질을 없애며, 불필요한 관직을 덜어내서 그 예산으로, 선발되어 단련된 군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혼란스러운 세상을, 연횡이니 합종이니 하는 소진과 장의 같은 유세객들의 세 치 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과연 초나라의 재상이 된 오기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하였습니다.
쓸데없는 법을 명확히 제정하고, 봉록만 받는 쓸모없는 관직을 없애고, 초나라 왕실과 거리가 먼 공족들의 특권 또한 몰수하여 그 예산으로 군대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초나라의 성을 축성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효율적으로 축성하고, 이를 법으로 제정하기도 하였고, 초나라에서 그냥 먹고살던 귀인들을 공지로 보내 불모지를 개척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기는 남쪽으로는 월나라의 잔당 백월을 평정하였고, 북쪽 조그마한 나라 진·채를 병합하고, 조·한·위 등의 삼진을 격퇴했으며,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정벌하여 굴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BC 381년 초 도왕이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이전에 오기의 개혁 정책으로 찌 눌리던 귀족과 초나라 종실의 귀족과 대신들이 내란을 일으켜 오기를 공격하게 되었죠. 그러자 오기는 달아나서 초 도왕의 시신 위에 엎어졌는데, 이때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들이 오기에게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날려 죽이려다 초 도왕의 시신까지 활로 맞히고 말았습니다.
다음 BC 380년 등극한 초 숙왕은 도왕의 장례를 치르고 자기 아버지인 도왕의 시신과 오기에게 활을 쏜 자들을 모두 색출하여 모두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이 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멸족당한 집안이 70여 곳이나 되었으니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씨춘추에서는 이와 같은 정황을 보다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초 도왕이 죽은 후에 초나라의 귀인들이 오기를 죽이려고 활을 쏘자 오기가 그들을 향해 "내가 너희들에게 나의 용병을 보여주리라."라 말하고는 화살을 맞은 채로 달아났다.
오기는 도왕의 시신 앞에 엎어지더니 시신에 화살을 꽂아놓고 거짓으로 "군신들이 왕에게 난을 일으킨다!"라는 말을 외치고 죽었습니다. 당시 초나라의 법에는 왕의 시신을 병기로 범한 자는 모두 중죄가 가해져서 그 삼족들까지 처벌받았는데, 오기가 이를 알고 있었기에 이런 수를 쓴 것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일설에는 오기가 사지가 찢겨 죽었다고도 전합니다.
이후 위나라에서 공숙좌가 장군이 되어 회북에서 한·조나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 장수인 악조를 사로잡은 일이 있었죠.
위 혜왕(제위 BC370〜361년)이 공숙좌에게 100만 록에 달하는 토지를 상으로 내리려 하자, 공숙좌는 이를 사양하며 “자신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오기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하며 사양했습니다.
이에 위 혜왕은 오기의 후손을 찾아내서 20만의 전록을 하사하였다고 전해 집니다.
공숙좌는 다음 세대 상앙이란 사람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상앙은 진나라가 기용하여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위 혜왕에게 추천하였으나 멍청한 위 혜왕이 쓰지 않아 진나라로 도망하여 진나라 효공이 등용하여 천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니 상앙은 오기의 제자 공숙좌를 통해 오기를 배운 사람이 됩니다.
이 상앙과 공숙좌의 이야기는 사기열전 8편에서 자세하게 소개토록 하겠습니다.
암튼 오기 병법은 후세에 전해지게 되고 그 내용은 대체로 오기가 위 문후나 그 아들인 위 무후와 나누었던 문답을 수록한 것입니다. 사마천은 위나라 문후, 무후에게 나라를 살리는 계책을 말하고도 오기가 죽을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초나라에서 오기의 정치가 각박하고 몰인정하였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오기의 부인을 죽였다면 위혜왕이 후손을 찾아내어 상을 주었다는 것은 거짓이 되고, 마을 주민을 30명씩이나 죽였다는 사람이 일국의 재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후인들이 꾸며낸 악담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살인을 하고서 일국의 대장군으로 왕을 모셨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세상은 다 같이 살 수 있도록 정치를 해야 함에도 너무 정의와 도덕을 중요시하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지도자의 절제와 인덕만으로도 세상은 다스리기 어렵다는 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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