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토스 출신 탈레스(BC625년)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밀레토스는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에 있던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의 도시의 이름으로, 현재는 투르키에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BC 6세기 중반에 이오니아 인들이 건너가 도시를 세웠습니다. 당시 그리스 동쪽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나중에 뤼디아와 경쟁하였고 결국 뤼디아에 굴복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 제국이 성립한 이후에는 페르시아에 복속되었고, 기원전 502년 이오니아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의 중심 도시였죠.
고대 그리스의 세 발 솥(Tripous)과 탈레스(Thales) 사이에는 흥미로운 철학적이고도 상징적인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일화는 주로 고대 저술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ërtius)의 저서 『유명 철학자들의 생애』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세 발 솥은 제물이나 신탁, 또는 승리자에게 주는 상징적인 선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솥은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세 개의 다리를 가진 형태였으며, 종종 신전이나 신에게 바치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밀레토스 근처의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을 던져 올렸는데, 황금으로 된 세 발 솥 하나가 나왔습니다.
누가 가져갈 것인가?
어부들 사이에서 이것을 누구에게 줄지 논쟁이 일어났고, 결국 델피 신탁에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델피의 신탁은 말했습니다.
"이 솥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탈레스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당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알려진 탈레스에게 세 발 솥을 주었습니다.
아무튼 결국 누구에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ërtius)의 저서 “유명 철학자들의 생애”에 따르면 그 솥을 탈레스에게 주었고, 여기저기 현명한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그리스 아테나이의 정치인, 입법자, 시인인 그리스의 일곱 현인 가운데 한 사람 “솔론(BC 638년경 ~BC 558년경)”의 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솔론은 세 발 솥을 텔포이 신전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칼리마코스의 저서 “이암보스 시집”에서 밀레토스의 역사를 집필한 “레안드리오스(Leandros BC 6세기 후반 ~ 5세기 초)”로부터 인용한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르카디아 사람 바튀그레스라는 사람이 좋은 술잔을 하나 유산으로 남기고 죽었는데, 그가 임종하면서 “이것을 지혜로운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의로운 사람에게 주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돌고 돌아 또 탈레스에게 왔다는 거지요.
탈레스는 밀레토스의 신성한 장소로 돌려보냈습니다.
컬라마코스가 전하는 이야기로는 탈레스가
“이것을 우승상을 두 번째 받은 탈레스가 나를 네일네오스의 백성의 수호신에 바치나니.”
여기서 내일네오스가 밀레토스를 정복했기 때문에 네일네오스라고 했는데 결국 밀레토스의 백성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술잔을 여기저기로 나른 사람은 바튀그레스의 아들 튀리온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엘레우시스 저서 “아킬레우스에 관하여”, 뮌도스 사람 알렉손이 저술한 “신화 모음집”에서 전래된 이야기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리디아 크로이소스 왕의 친구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라고 부탁받은 것을 텔라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황금 술잔은 다시 라케다이몬 사람이며 올림피아 감독관이었던 킬론이 퓌티오스(아폴론의 별칭)에게 “자신보다 제혜로운자는 누구인가?”라고 했는데 퓌티오스가 “뮈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이테 사람으로 켄에 사는 뮈손이란 사람이 그대보다 훨씬 현명한 마음을 갖춘 자이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와 지혜자 피타코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하는 철학자 클레아르코스가 등장하는 상징적인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크로이소스는 가장 부유한 왕으로 유명한 인물로, 자신의 부를 지혜로운 사람에게 보상하고자 귀한 금속으로 만든 술잔(혹은 제사용 그릇)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 술잔을 당대의 지혜자 중 한 사람인 피타코스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피타코스는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는 데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지혜자에게 이 술잔을 다시 보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술잔은 당대 여러 지혜자들 사이를 돌며 전해졌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최고의 지혜자임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를 높이며 술잔을 양보했던 것이죠.
이 일화는 고대 철학자 클레아르코스와 다이마코스 등의 저술에서 전해지며, 단순한 선물 교환을 넘어 지혜의 상대성과 겸양의 미덕, 그리고 진정한 지혜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크로이소스가 지혜자에게 부의 상징을 보냈다는 점은, 권력이 지혜를 인정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제스처로 해석되며, 지혜와 정치 권력 간의 관계에 대한 고대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크로이소스의 황금 술잔” 이야기는 단순한 선물 전달이 아닌, 지혜의 윤리적 태도, 겸손의 철학, 그리고 당대 철학자들 간의 상호 존중을 보여주는 고대의 중요한 서사로 기억된다.
고대의 이야기 중에 안드론(Andron)이라는 역사가 또는 저작자가 남긴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지혜자들을 평가하고 존경하는 독특한 방식이 담겨 있다. 안드론은 소위 ‘일곱 현자(Seven Sages)’라 불리는 지혜자들 사이에 있었던 세 발 솥(Tripous)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이 전승에 따르면, 한때 어느 어부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아폴론 신에게 봉헌된 세 발 솥 하나를 그물에 건져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 솥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당시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죠. 문제는 그 시대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부들은 그리스 전역에서 이름난 지혜자들, 즉 “일곱 현자”에게 이 솥을 전달해, 그들 중 가장 지혜로운 이가 가지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혜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가 더 지혜롭다며 서로에게 그 솥을 양보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발 솥은 지혜자들 사이를 돌고 돌아, 결국 탈레스(Thales)에게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탈레스 역시 그 솥을 원하지 않고, 다시 아폴론 신에게 돌려보내자는 제안을 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세 발 솥은 본래의 주인인 아폴론에게 바쳐지며, 지혜자들의 겸양과 철학적 태도가 돋보이는 일화로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물건의 주인 찾기가 아니라, 지혜의 본질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진정한 지혜자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자처하지 않으며, 그 지혜를 명예나 보상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헤르미포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전해지는 전승과 유사한 방식으로, 탈레스가 운명(포르투나)에게 세 가지에 대해 감사했다고 기록합니다. 탈레스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짐승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것”
“여자도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
“이방인이 아닌 그리스인(헬레네)으로 태어난 것”
이 고백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 조건을 철학적으로 성찰했음을 보여줍니다
헤르미포스의 또 다른 기록은, 탈레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철학자로서의 위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으로 탈레스에 관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그가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다가 발밑을 보지 못하고 우물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면에서 한 노파가 그를 보고 "하늘의 일을 알면서 네 발밑도 보지 못하느냐"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탈레스의 학문적 열정과 함께, 현실 감각을 놓친 철학자의 인간적인 허점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고대인들이 철학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풍자적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죠
탈레스는 당시 사람들에게 천문학자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시인 티몬은 그를 “일곱 현자 중 천문술의 대가”라 불렀고, 아르고스의 로본은 그의 저술 분량이 약 200행에 달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또 그의 초상에는 “밀레토스가 낳은 현자, 천문술의 탈레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으며, 이는 그가 단지 철학자에 머물지 않고, 과학적 탐구자이자 존경받는 공인된 지혜자였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헤르미포스의 기록은 탈레스가 자기 성찰과 학문적 탐구심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서, 인간성과 철학자의 면모를 아우른 고대의 위대한 사상가였음을 잘 보여준다.
| 질문 또는 상황 | 탈레스의 대답 |
| 어떤 사람이 “그렇다면 당신은 왜 죽지 않는가?” |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오.” |
| “밤과 낮 중 어느 쪽이 먼저인가?” | “밤이 하루 앞섭니다.” |
| “신들 모르게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가?” | “아니오, 신들 모르게는 불의를 저지를 수 없소.” |
| “간통한 사람이 자신은 간통하지 않았다고 맹세해도 되는가?” | “거짓 맹세가 간통보다 더 나쁘지 않다.” |
|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 “자신을 아는 것이다.” |
| “무엇이 가장 쉬운가?” |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
| “무엇이 가장 즐거운가?” | “목적을 이루는 것.” |
| “무엇이 신적인가?” | “시작도 끝도 없는 것.” |
|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못마땅한 것은?” | “늙은 참주(폭군).” |
| “불행을 어떻게 가장 쉽게 견디는가?” | “자신의 적들이 더 못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면.” |
| “가장 훌륭하고 정의롭게 사는 방법은?” |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그 비난의 이유가 되는 일을 자신이 하지 않는 것.” |
| “누가 행복한가?” | “몸이 건강하고, 영혼은 슬기롭고, 본성은 잘 교육된 사람.” |
| 조언 | “곁에 있든 없든 친구(신들을) 기억하라.” |
| 조언 | “겉모습으로 멋부리지 말고, 아는 일에서 아름다운 자가 되어라.” |
| 조언 |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벌지 마라.” |
| 조언 | “말로 인해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과 불화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
| 조언 | “그대가 부모에게 봉양한 것과 똑같은 것을 늙었을 때 자식들에게서 받도록 햐라.” |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사람이자 작가로 알려진 로본(Lobon of Argos)은 탈레스에 대한 소중한 증언을 남긴 인물로, 특히 탈레스의 천문학자적 위상을 전해주는 기록을 전해줍니다.
로본은 아르고스 출신의 전기 작가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밀레토스가 낳았네, 천문술의 탈레스, 현자 중 현자”라는 문구가 탈레스의 동상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 문구는 단지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천문학자로서의 그의 탁월함을 강조합니다.
로본은 또한 탈레스가 약 200행의 시를 남겼다고 기록합니다 .
이 기록은 단편 형태로만 전해지지만, 탈레스의 학문적 저술 활동이 시적 형식으로도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로본의 기록은 탈레스가 단순한 자연철학자를 넘어 천체 관찰자(astrologos/astronomos)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동상의 비문과 시문 기록은 탈레스가 인간사뿐 아니라 우주에 관한 체계적인 탐구자였음을 말해줍니다.
로본의 기록에 따르면 탈레스가 지은 노래구절이 전해 집니다
“많은 말이 이해심 있는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나의 진정한 지혜를 추구하라.
하나의 진정한 선을 선택하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수다쟁이의 입을 잠재우기 위해.”
BC2세기 경 활동한 아테네 출신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 연대기에 탈레스의 생애를 전하고 있습니다.
탈레스는 제35회 올림피아드의 첫해, 즉 BC 640/39년에 태어났다고 아폴로도로스는 전합니다
진정한 현자로 인정받은 시기에 대해서는 BC 582/81년경 아테네 아르콘 다마시우스 집권 당시, 탈레스가 공식적으로 “현자(sage)”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후일 ‘일곱 현자(Seven Sages)’ 전승의 기원 시점과 일치합니다
탈레스는 돈 많은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 시대에 활동했으며, 크로이소스가 할리스 강을 건너지 않고 건너게 했다는 이야기(헤라도토스의 전승)를 가능케 했던 시대적 배경을 공유했습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BC 585년에 발생한 일식을 예측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주장하며, 세계의 첫 철학자로 평가받습니다.
아폴로도로스의 『철학자들의 생애』에 따르면, 마그네시아의 데메트리오스(Demetrius of Magnesia)가 언급한 “동명이인 탈레스”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는 총 다섯 명의 다른 탈레스가 포함됩니다.
| 번호 | 구분 | 설명 |
| 1 | 수사학자 (웅변가) | 칼라티아(Callatis) 출신의 웅변가로, 화려하지만 과장된 어투를 구사했다고 전해짐 |
| 2 | 화가 | 시키온(Sicyon) 출신의 화가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음 |
| 3 | 고대 인물 |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리쿠르구스와 동시대인으로, 아주 오래 전 활동했던 인물 |
| 4 | 도리스(Duris)가 언급한 인물 | 도리스의 『회화에 관하여(On Painting)』에서 언급되는 인물 |
| 5 | 후기의 불분명 인물 | 후기(신세대)의 탈레스로,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비평비평(Critical Writings)』에서 언급됨 |
탈레스는 체력과 나이가 들어 매우 쇠약해졌지만, 여전히 공공의 일이나 자연 현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던 중, 더위와 탈진으로 인해 관람석에서 앉은 채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죽음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철학자의 최후로 묘사되며, 지혜로운 삶의 자연스러운 마무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탈레스는 고대 자료에 따르면 BC 546년경(B.C. 546)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연도는 고대 그리스 학자인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가 그의 『연대기(Chronika)』에서 제시한 것으로, 제58회 올림피아드(BC 548–545) 기간 중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무리 속에 둘러싸인 채, 경기장 한쪽에 앉아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
탈레스의 무덤에는 후대에 이런 말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이 작은 무덤 아래, 위대한 탈레스가 잠들다.”
이는 그의 육체는 작지만, 정신은 거인이었다는 의미를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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