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그리스 이외의 이민족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했던 사람들은 철학하는 방법과 형태에 대해서도 이민족의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를 들면 조르아스터교의 나체 현인, 고대 켈트 문화(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의 드뤼이데스는 수수께기 같은 희한한 물음의 방식을 취했으며, 신에 대한 존중, 악한행동 금지, 용기를 기르라고 했습니다,
조르아스터는 누구일까요
지금의 러시아 남부 초원지대 흑해 연안에는 수많은 유적지가 있었습니다.
대락 서기전 1만4000〜서기전 1만 2000년 따듯해진 기후가 마지막 빙하기를 끝내게 됩니다.
그러자 마지막 동토였던 북해의 빙하와 영구 동토를 녹였고 그로 인해 생긴 물로 인해 강들이 생겼고 이 물들이 카스피해쪽으로 밀려왔습니다. 빙하기 말기의 카스피해는 거대한 내해가 되었고, 점점 흘러들어온 물은 거대한 호수를 만들게 됩니다. 이 바다 이름을 흐발린 해(Khvalynian Sea)라고 합니다. 2,000년 동안 카스피해 북쪽 해안선은 오늘날 볼가강 증류의 시라토프와 우랄 강변의 오렌부르크까지 닿아 우랄산맥 남쪽 사람들의 동서간 이동을 제한하게 됩니다. 이 흐발린 해는 우랄산맥의 동과 서에서 번창한 채집민 문화를 동서로 갈라 놓았습니다. BC 11,000년〜BC9,000년 무렵 수위가 상승하여 결국 남서쪽 배출구, 즉 카프카스 산맥 북쪽 마니치 연안 저지대를 통과하여 거센물결이 당시 게계의 해수면보다 휠씬 수위가 닞았던 흑해로 쏟아 들어오게 됩니다.
흑해 유역으로 계속 유입된 물은 결국 범람했고 다시 남서쪽 배출구 보스포로스 협곡을 따라 마침내 에게해로 들어갑니다. 오늘날 미국 켈리포니아 정도 크기에 2,100m 깊이의 흑해는 서기전 8,000년부터 에게해 및 세계의 대양 수위와 같아지게 됩니다.
우랄산맥의 얼음이 녹아내리기 전에는 동서가 소통했었는데 점차 녹아내리면서 생긴 호수들로 인해 동서가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현대에 들어와서도 살던 지역이 수몰되면 여기 저기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물론 그런 상황이 단 시일내에 벌어진건 아니지만 몇 백년을 두고 고향을 떠나게 되는 겁니다.
흑해는 그리스어로 폰투스 에우크세이노스(Pontus Euxeinos)였는데, 여기서 흑해 지역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이 유행하게 됩니다. 한때 흐발린 해 북단의 바닥이던 카스피해 북부 연안 저지는 소금기가 있는 점토와 어울리지 않는 조개껍데기 층, 모래, 군데군데 염호 그리고 카스피해 바로 북쪽의 붉은 모래 사막(린페스키 사막)과 구분되는 건조한 초원에 뒤덮힌 방대한 초원으로 변했습니다.
중석기, 신석기 사냥꾼들이 소규모 무리를 지어 이 소금기가 있는 평원 전역에서 산양, 오나거, 말 따위를 사냥하게 됩니다. 그러다 바다가 점점 후퇴하자 사냥꾼들는 우랄 산맥 동쪽과 서쪽의 문화적으로 그리고 아마 언어적으로도 매우 다른 집단이 되었죠.
이 지역 흑해- 카스피해 초원 지역 최초의 소 목축인들은 BC5,800〜BC5,700년 다뉴브 강 하구에 도착했으며, 인도∙유럽 공통조어와 상관없는 언어를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BC6,200년 무렵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떠나 북쪽으로 발칸과 카르파티아 분지의 온대림 지대로 밀려들었던 전위 부대였습니다.
결국 거주환경의 변화는 선주민들의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람이 카스피해와 흑해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쪽 여러 군데로 이주하게 됩니다.
동서남북 즉 유럽쪽, 중동쪽, 인도쪽, 북쪽으로 이동하여 동질성있는 문화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듭니다.
그들은 BC4,500년경부터 카키프카스 초원에 살았지만 BC3,000년대 중반에는 멀리 떠돌기 시작하여 마침내 현재의 그리스, 이탈리아, 스칸드나비아, 독일에 이르게 됩니다.
살았던 사람들을 “아리아인”이라 했으며 사용하는 언어 인도유럽어는 그 지역에 맞게 변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신과의 중재자였던 마고스는 흑해, 카스피해에 살았던 아리아인들의 신관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이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 함께 하였기에 여기저기서 마고스가 출연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주제로 한 역사서를 쓴 인물 클레이타르코스(Kleitarchos BCBC 4세기 후반)는 나체 현인들이 목숨을 파리처럼 여겼다고 하며 칼다이오스들 같은 경우에는 천문과 미래 예측에만 매달렸으며, 마고스들은 자신들만이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마고스들은 신들을 불, 흙, 물이라고 했으며 신상 숭배를 금지했고, 신들은 성별이 없다고 하였고, 화장 장례를 극히 혐오했다고 합니다.
마고스에 관해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무척 많았습니다.
선한 영혼을 즉 천지를 창조한 의미를 가진 제우스 혹은 오르마스데스로 칭하고, 악한 영혼을 하데스, 아레이마니오스(어둠)이란 내용을 담은 기록들이 많았습니다.
BC 1세기경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네오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하며 스토아 철학과 피타고라스주의적 금욕주의를 결합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는 소티온(Sotion)의 마고스에 대한 이야기는 모친이나 딸과 성관계는 경건하다고 했으며, 흰 옷을 좋아하고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마기코스’, 클레이타르코스(Kleitarchos)의 아버지 데이논(Deinon BC340년경 활동) 의 저서인 ‘역사’에서 마고스들은 마법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집트인들보다 마고스들의 역사는 먼저였다고 했습니다.
BC 3세기 무렵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문헌학자이자 전기 작가로 주로 철학자들과 종교 인물들에 대한 전기적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학자였던 헤르미포스(Hermippos)에 따르면 마고스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는 인도와의 직접 무역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에우독소스를 파견 에우독소스는 홍해를 지나 아라비아 해를 항해하여 인도 서해안(말라바르 지역)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계절풍(monsoon)을 이용해 인도까지 항해한 최초의 유럽인 중 한 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에우독소스(Eudoxos)의 여행기에서도 마고스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이자 수사학자로, 알렉산더 대왕 이전 시대의 정치와 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인물, 테오폼포스(Theopompos BC378년생)는 BC411년부터 스파르타 패권기의 역사 기록한 ‘헬레니카(Hellenica)’,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통치와 정치에 대해 쓴 ‘필리피카(Philippica)’에서도 역시 마고스를 언급하였습니다.
테오폼포스(Theopompos_는 마고스가 자기들이 기도하면 다시 태어나며 죽은 자도 살 수 있고, 영속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에게해 남동쪽, 그리스 본토와 터키 해안 사이 로도스 섬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에우데모스 (Eudemus of Rhodes 활동 시기 BC370~300년)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중에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있는데 그와 관련이 있는 서적으로 보입니다.
이 사람도 역시 마고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솔로이(Soloi, 키프로스 섬북서부의 고대도시)의 클레아이코스(Klearchos)도 수많은 저술 활동을 하였는데 그 중 ‘교육에 관하여’에서 조르아스커교의 나체 현자들보다 마고스가 앞서 있다고 합니다.
중동지역의 유대인들도 마고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이집트 신관이었던 마네토스(Manethos)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학자이자 제사장이고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의 그리스어 기록자로서, 오늘날 고대 이집트 왕조사 체계를 세운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그리스-로마 세계에 이집트 문명과 역사를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마네토스가 ‘자연학 요약’이란 책을 저술하면서 신에 대해 풍뎅이, 뱀, 매 또는 다른 동물로 표현했는데 신의 진정한 모습을 몰라서 동상, 석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 주제 | 이집트 철학 (BC 3000~500년) | 그리스 철학 (BC 600~300년) | 연결 및 영향 |
| 우주관 (Cosmos) | 질서(Ma'at)와 혼돈의 균형 중심 | 로고스(Logos), 조화와 대립 | 둘 다 우주는 조화와 질서를 따르는 원리가 있다고 봄 |
| 윤리·정의 | 마아트(Ma'at) = 진리·정의·조화 | 디케(Dike), 아레테(Arete, 덕) | 이집트의 ‘정의의 실천’ 개념이 그리스 윤리학에 반영 |
| 지혜의 이상 | 호루스, 토트 신 = 지혜·언어·계산 | 소크라테스의 지혜 추구 | 이집트의 신적 지혜 전통 → 인간의 이성 탐구로 전환 |
| 사후 세계 | 내세 존재, 윤리 실천에 따라 심판 | 플라톤의 영혼 불멸, 이데아 세계 | 이집트 사후 세계관 → 플라톤 철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영향 |
| 교육/철학자상 | 사제 계층이 지식·윤리 전파 | 철학자는 ‘진리를 사랑하는 자’ | 사제와 철학자의 역할이 공통적으로 교육자·도덕교사 |
| 형이상학 | 영혼(바·카)과 신적 원리의 관계 | 이데아,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 | 존재와 영혼에 대한 이집트의 관념이 플라톤 사상과 유사 |
| 지식 전수 | 『프타호텝의 교훈』 등 지혜문학 |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 논증적 글 | 도덕 교육 목적의 문헌 형식 유사 (다만 형식은 구술 vs 논증) |
| 시간관/역사 | 순환적, 신화적 시간 | 직선적·철학적 시간 (일부는 순환론) | 시간관에서 일부 유사성과 차이 공존 |
이집트인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보다 수세기 앞선 고대 문명 기반의 지혜 전통(wisdom tradition)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철학(philosophy)"이라고 부르는 체계적인 학문과는 다르지만, 우주, 인간, 정의, 죽음, 질서(Ma'at)에 대한 깊은 사유와 실천 원칙들을 포함하고 있어, 고대 이집트의 철학적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오니아 도시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습니다. 아리스타고라스(Aristagoras)는 페르시아의 힘을 이용해 나크소스(Naxos) 정복을 시도, 실패하면서 입지가 약화되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오니아 도시들을 선동하여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아테네와 에레트리아의 지원을 받아 사르데이스(Sardis)를 공격하여 전면적인 전쟁 확산되었습니다.
이 아리스타고라스(Aristagoras)는 마고스들이 자연현상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법률을 제정했으나 신들의 전령, 상업과 교역, 도둑, 여행자, 꿈, 말, 그리고 죽은 자의 인도자(psychopompos)로 알려진 헤르메스(Hermes)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그리스로 급속하게 밀려 유입된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자신들의 논리로 정립한 사상체계는 확보하고 있었죠. 그것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료로 알려져 있고, 천문학, 철학, 문학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천문학 사상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코스(Heraclides Ponticus, 약 BC390 ~ BC 310년)가 저술한 ‘숨이 끊어진 것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피타고라스가 시퀴온의 참주였던 레온과 시퀴온 이라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신 이외에는 누구도 치혜롭지 않다.” 그때 철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피타고라스(BC570년경)였습니다.
오래전에는 철학을 지혜라고 부르고 그것을 말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를 소피스트라고 했으나 플라톤은 이 말이 경멸스럽다고 했습니다.
3대 희극작가로 알려진 크라티노스(Kratinos) BC 5세기의 아테네에서 활동했으며, 아테네의 민주 정치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비극적인 사건들이나 정치적 논란을 작품에 반영하여 관객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부족하여, 작품과 그가 남긴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라티노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페리클레스(Pericles)”라는 희극입니다. 이 작품은 아테네의 정치인 페리클레스와 그의 정치적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페리클레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끌며 아테네를 강력하게 지배하던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했습니다. 크라티노스는 “아르킬로코이”라는 작품에서 아르킬로코스를 비롯한 풍자적 시인들 또는 비판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희극적인 방식으로 사회나 인물들을 풍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작품에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소피스트라고 찬양합니다.
철학의 기원을 따질 때 일반적으로 탈레스(Thales)가 “서양 철학의 첫 출발점”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아르케(근원)를 ‘물’로 보았고, 자연현상을 신화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한 점에서 철학적 사유의 시초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와 피타고라스는 철학의 초기 발전을 대표하는 두 축으로 볼 수 있으며, 서로 다른 방향에서 철학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BC 약 610~546년)는 밀레토스 학파의 일원으로, 세계의 본질(아르케)을 ‘아페이론’(무한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세계가 물리적 법칙과 균형의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밀레토스학파라는 것은 이오니아학파라고도 하는데 탈레스가 밀레토스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초로 자연현상에 대해 신의 개입 없이 설명하려 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는 형이상학, 자연과학적 철학의 시초로 평가됩니다.
키클라데스 제도 시로스(Syros) 섬 출신 페레퀴데스((Pherecydes of Syros, BC 약 6세기)에게서 배운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數)이다”라고 말하며, 수학과 조화의 원리를 세계의 본질로 보았습니다. 그는 형이상학, 윤회(영혼의 순환), 정신적 수련, 도덕적 삶을 강조했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철학과 종교적 삶을 결합했으며, 그 영향은 플라톤을 비롯한 후대 철학자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그는 수학철학, 윤리철학, 영혼론의 시조로 평가받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초기 단계부터 두 개의 주요 흐름으로 나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오니아 학파(Ionian school)와 이탈리아 학파(Italian school)입니다. 이 두 학파는 철학의 시작점에서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이후 서양 철학의 방향을 크게 형성했습니다.
이탈리아 학파(Italian school)라고 불리는 것은 피타고라스가 오랫동안 이탈리아에서 철학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 철학자 | 아르케(근원) | 사상의 특징 |
| 탈레스 | 물 | 세계를 물리적 요소로 설명, 최초의 철학자 |
| 아낙시만드로스 | 아페이론 | 무한하고 비가시적인 근원, 형이상학적 사고 |
| 아낙시메네스 | 공기 | 관찰 가능한 물질로 만물의 변화를 설명 |
| 헤라클레이토스 | 불, 로고스 | 변화, 대립, 조화의 원리를 강조한 깊은 철학적 성찰 |
이오니아 학파(Ionian school)는 탈레스 ⟶ 아낙시만드로스 ⟶ 아낙시메네스 ⟶ 아낙사고라스 ⟶ 아르켈라오스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스페우시포스 ⟶ 크세노프크라테스 ⟶ 플레몬 ⟶ 크란토르 ⟶ 크라테스 ⟶아르케실라오스 ⟶ 라퀴데스 ⟶ 카르네아데스 ⟶ 클레이토마코스 로 이어집니다.
| 번호 | 이름 | 활동 시기(BCE) | 소속 학파 | 주요 사상/역할 |
| 1 | 탈레스 | 624?~546? | 이오니아 학파 | 만물의 근원은 물 |
| 2 | 아낙시만드로스 | 610?~546? | 이오니아 학파 | 아페이론(무한자), 최초의 우주론 제시 |
| 3 | 아낙시메네스 | 585?~525? | 이오니아 학파 | 만물의 근원은 공기 |
| 4 | 아낙사고라스 | 500?~428? | 이오니아 학파 | 정신(nous)이 우주를 조직 |
| 5 | 아르켈라오스 | 5세기 중반 | 이오니아 계승 | 윤리적 전환 시작, 소크라테스의 스승 |
| 6 | 소크라테스 | 470~399 | 소크라테스 학파 | 문답법, 윤리 철학의 창시자 |
| 7 | 플라톤 | 427~347 | 플라톤 학파 (아카데미아) | 이데아론, 국가론, 철인정치 |
| 8 | 스페우시포스 | ?~339 | 아카데미아 2대 원장 | 플라톤 조카, 이데아 대신 수학적 원리 강조 |
| 9 | 크세노크라테스 | 396~314 | 아카데미아 3대 원장 | 영혼의 수적 본질, 형이상학 발전 |
| 10 | 폴레몬 | ?~270 | 아카데미아 4대 원장 | 도덕적 실천, 금욕주의 강조 |
| 11 | 크란토르 | ?~276 | 아카데미아 철학자 | 《슬픔에 대하여》, 윤리학 발전 |
| 12 | 크라테스 | ?~268 | 아카데미아 5대 원장 | 전통적 플라톤 철학 계승 |
| 13 | 아르케실라오스 | 316~241 | 중기 아카데미아 | 회의주의 전환 시작, 지식 불가지론 |
| 14 | 라퀴데스 | ?~216 | 중기 아카데미아 | 온건한 회의주의 유지 |
| 15 | 카르네아데스 | 214~129 | 후기 아카데미아 | 급진적 회의주의, 개연성(probability) 강조 |
| 16 | 클레이토마코스 | 187~110 | 후기 아카데미아 | 카르네아데스 사상 체계화, 신중한 회의주의 |
모두 이오니아 학파(Ionian school) 중 소크라테스의 윤리 중심 철학에서 출발하는 두 개의 학파는 페리파토스 학파(Peripatetic School, 소요학파)와 스토아학파가 있습니다.
페리파토스 학파(Peripatetic School, 소요학파)의 흐름은 소크라테스에서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us)까지의 철학적 계보는 소크라테스 → 안티스테네스 ⟶ 디오게네스 ⟶ 크라테스 ⟶제논 → 클레안테스 ⟶ 크뤼시포스 → 테오프라스토스로 이어집니다.
| 순번 | 철학자 | 활동 시기(BCE) | 소속 학파 | 전승 관계/설명 |
| 1 | 소크라테스 | 470~399 | 소크라테스 학파 | 윤리 중심, 문답법, 여러 학파에 지대한 영향 |
| 2 | 안티스테네스 | 약 445~365 | 키니코스학파 창시자 | 소크라테스 제자, 금욕적 삶 강조 |
| 3 | 디오게네스 | ?~323 | 키니코스학파 | 안티스테네스의 제자, 극단적 자족·자연주의 삶, 거리 철학자 |
| 4 | 크라테스 | 약 365~285 | 키니코스학파 | 디오게네스 제자, 키니코스 철학 대중화, 스토아 철학에 영향 |
| 5 | 제논 | 약 334~262 | 스토아학파 창시자 | 크라테스에게서 영향, 키니코스+소크라테스+플라톤 사상 혼합 |
| 6 | 클레안테스 | ?~232 | 스토아학파 2대 학장 | 제논의 후계자, 인내와 정신력 강조 |
| 7 | 크뤼시포스 | 280~206 | 스토아학파 3대 학장 | 논리학 정립, 스토아 교리 체계화 |
| 8 | 테오프라스토스 | 371~287 | 페리파토스 학파 2대 | 아리스토텔레스 후계자, 스토아 학파 계열이 아님, 별개의 철학 전통 계승 |
페리파토스 학파(Peripatetic School, 소요학파)의 또 다른 흐름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테오프라스토스로 이어지는 계보도 있습니다.
| 순번 | 철학자 | 활동 시기(BCE) | 역할 및 관계 | 핵심 업적/사상 요약 |
| 1 | 플라톤 | 427~347 |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 아카데미아 설립, 이데아론, 이상주의 철학 |
| 2 | 아리스토텔레스 | 384~322 | 플라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의 스승 | 현실주의 철학, 사단인론(4원인설), 논리학 체계화, 리케이온 설립 |
| 3 | 테오프라스토스 | 371~287 |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제자, 리케이온 2대 학장 | 식물학의 창시자, 윤리학·형이상학 정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 계승·정리 |
또 스토아학파는 소크라테스⟶안티스테네스⟶디오게네스⟶크라테스⟶제논으로 이어집니다.

페레퀘데스(Pherecydes of Syros)에서 출발하는 이탈리아 학파(Italian school)는 페레퀘데스 ⟶ 피타고라스 ⟶ 테라우게스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 제논 ⟶ 레우키포스 ⟶ 데모크리토스 ⟶ 나우시파네스 ⟶ 에피쿠로스로 이어집니다.
| 순번 | 철학자 | 생애 (대략) | 핵심 사상 요약 | 다음 철학자에게의 영향 |
| 1 | 페레퀘데스 | BC 6세기 초 | 신화에서 철학으로의 과도기 사상가. 영혼 불멸, 윤회 개념. 우주적 이원론. | 피타고라스에게 신화적 철학, 윤회, 영혼 개념 전수 |
| 2 | 피타고라스 | c. 570–495 BCE | “만물은 수” / 조화와 질서 / 윤회 / 공동체 생활과 정신적 수련 강조 | 테라우게스에게 종교-철학 체계 전수 |
| 3 | 테라우게스 | 전승적 인물 | 피타고라스학파의 핵심 인물로 전승됨. 명확한 사상보다는 매개 역할 강조 | 크세노파네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 미친 인물로 간주 |
| 4 | 크세노파네스 | c. 570–475 BCE | 신인동형적 관념 비판, "하나의 신" 개념 제시. 자연주의적 일원론 성격 |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적 전거자, 존재론의 씨앗 제공 |
| 5 | 파르메니데스 | c. 515–445 BCE | “존재는 있고, 무는 없다” / 변화와 다수성 부정 / 이성적 인식 중시 | 제논에게 존재론과 논증 사유 계승 |
| 6 | 제논 | c. 490–430 BCE | 제논의 역설로 운동과 변화의 모순성 주장 / 논리학적 사고 강화 | 레우키포스에게 감각과 변화에 대한 문제 제기 |
| 7 | 레우키포스 | c. 5세기 BCE | 최초의 원자론 창시자 / 존재는 원자와 공허 / 변화는 원자의 운동 |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론 사상 전수 |
| 8 | 데모크리토스 | c. 460–370 BCE | 원자론 체계화 / 감각과 경험 중시 / 기계적 세계관 / 쾌락주의적 윤리 개념 포함 | 나우시파네스에게 원자론 및 경험주의 철학 전수 |
| 9 | 나우시파네스 | c. 4세기 BCE | 데모크리토스 계승자 / 감각 신뢰 강조 / 자연의 질서 탐구 / 철학적 쾌락주의 | 에피쿠로스의 직접적 스승으로 결정적 영향 |
| 10 | 에피쿠로스 | 341–270 BCE | 원자론 + 윤리 철학 /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온) / 신은 무관심한 존재 / 쾌락주의 완성 | 후대 헬레니즘 철학과 루크레티우스에 영향 |
지금까지 마고스는 어디서 출발하여 그리스 문명권,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권, 이집트 문명권으로 흘러들어 갔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여러 고대 철학자들의 기록과 특히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로부터 맥락을 집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랄산맥의 동토가 녹아 동서의 구분이 시작되었고, 그 바람에 뿌리를 같이 하는 언어인 인도-유럽어를 쓰는 카스피해, 흑해 등지에 살던 사람들의 이동이 어떻게 촉발되어나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형성된 철학의 원조가 되는 지방에 대해서도 정리도 해보았습니다.
또 그들만의 철학이 어떻게 계승해 왔는지 계보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지역마다 그들만의 특색을 만들어 가는 계승도 탈레스의 역할을 비롯하여 각 파들의 형성과 그 계보를 이오니아 학파(Ionian school)와 이탈리아 학파(Italian school)를 통해 그들의 활동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의 사유 체계와 구체적 활동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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