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전략/사기 - 사기열전

사기열전 001 굶어 죽은 백이 숙제 이야기

BoomSoon Dream 2026. 7. 6. 12:06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약 3,000년 전 부터 2000년 전의 사람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서 우리들에게 기록으로 남겨 놓았죠.

고전이란 게 그러지 않은 책은 없지만, 다른 것 같지 않고 사마천은 인간 관계를 무척 섬세하게 그려 남겨 좋았어요. 이 사람은 돈 벌자고 쓴 것도 아니고 단지 아버지가 한번 써 놓아라.”하는 유언 때문이었죠.

그러니 글 써서 돈 벌자는 사람은 사마천에게 다시 배워야 되지 않을 까요?

사마천이 지금 글 써서 남긴다면 먼 훗날 약 4,000년에 펼쳐 든다면 그 옛날 글에 나왔던 사람들이 어쩌면 지금 사는 모습과 흡사하게 그리지 않을까, 아니 흡사한게 아니라 똑 같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사마천이 쓴 이야기들은 현재 우리들이 질투하고 시기한 모습과 똑 같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죠. 사기 열전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아마 3,000년 전과 지금을 헛갈릴 수 있으리라 생각듭니다.

똑 같은 상황이고, 출연자들이 모두 똑 같은 사람으로 이야기가 채워지지 않을까 봅니다.

그러니까 3000년 전에 했던 군상들이 현대로 튀어나와 활동한다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할 것입니다.

읽다 보면 이런 타임머신도 없을겁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사는 것도 조금 넓어지기 했어도 줄타기 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똑 같고, 정치, 사회, 문화 등이 모두 무대만 달라졌지 여전히 똑같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 쯤은 읽을 가치가 있는 고전이 아닌가 보입니다.

물론 다른 흥미 본위의 이야기 고전도 있고, 현대적 이야기 책들도 모두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해 주지만 사마천이 그려 놓은 세상은 본연의 인간을 그려 놓았죠. 그래서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 이야기입니다.

백곡 김득신(1604. 12. 8.~1684. 10. 8.)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입니다.

김시민은 그의 할아버지로 임진왜란 때 제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이며, 어머니는 사천 목씨였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득신이 태어날 즈음에 부친이 자기 집에 노자가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었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노자의 환생이니 무엇이든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아둔함에 혀를 차면서도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이러한 끈기 있는 학업 덕에 김득신은 만년에 시인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죠.

글쎄 머리가 좋지 않아서인지 남들은 7살에 깨우칠 글을 그는 10세쯤 돼서야 글을 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였지만, 몇 시간 전 공부한 것을 다 잊는 등 학습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여 자주 머리 나쁘다는 소릴 들었고 공부가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걸 본 그의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에게 공부를 멈추라는 유언을 남긴 후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밥을 먹을 때도, 보행할 때도 계속 책을 놓지 않으며 책 한 권은 113천여 번이나 읽고 다른 책들은 2만여 번 읽는 등 엄청난 노력으로 능숙해져 59세의 나이로 성균관에 합격했습니다. 한 번에 이룬 학문보다 충분히 노력한 공부는 쉬이 잊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되어 나중에 빛을 보게 됩니다.

공자의 손자 자사가 쓴 중용 20장 마지막을 보면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남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자신은 백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할 수 있거든 자기는 천 번을 한다면, 결국 이 도에 능할 것이니, 비록 어리석고 바보 천치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며, 비록 나약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지리라는 것을 몸소 실천한 천재였죠. ’

김득신 묘갈명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이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이 김득신이 사마천 사기열전의 첫 장을 장식하는 1,000자 정도의 백이 열전을 113,000번이나 읽었다는 믿지 못한 기록이 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독서량입니다.

 

그 글이 도대체 얼마나 좋은 글이었길래 그렇게 외웠을까,

그래서 그 글을 들여다보기로 하였습니다.

 

대체로 공부할 적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믿고 읽을 만하게 읽을 만한 것이 인간의 도리와 이치를 그린 그런 책들이라고 합니다. 즉 육예라는 서적들로 시경 서경 예기, 악경. 역경, 춘추를 말하고, 이 책 중에 고전 중의 고전 시경, 서경에 우, 하나라가 실존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있으나 워낙 오래되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사마천의 이야기입니다.

사마천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요임금은 이제 나이가 많아 왕에서 물러나 순에게 물려주고, 순임금은 우에게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우에게 물려주면서 12주의 악목이라는 관직들의 오케이 사인을 받고, 그리고도 몇 년을 테스트하고, 돈을 잘 번다든가, 치수 사업을 잘해 농가 수익을 올리는 등의 사업들이 쌓이면 그때야 왕위를 물려주었답니다. 이렇게 엄중한 것은 천하는 막중한 것이며 왕자는 대통으로 만 가지 일에 의무와 책임이 있으므로 섣불리 물려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요는 천하를 허유라는 인물에 맡기려 했죠. 그래 불러서 맡을 생각이 있냐 물어보니 허유는 뭔 소리여!!’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망하면서 그 소리를 들은 귀를 흐르는 냇물에 닦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냇갈 밑에서 소에게 물을 먹이려던 사람이 무슨 일에 그리하느냐고 묻자, 이래저래 해서 닦았다고 하자, 소 물 메이던 사람은 더럽다고 허유가 닦던 그곳보다 위에 올라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합니다.

또 하나라 걸왕 시절에는 변수, 무광이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허유와 같이 도망쳤다고 합니다.

권력에 전혀 유혹되지 않은 사람들이 칭송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마천은 이에 대해 인에 대한 모호한 갈등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마천은 현재 하남성 등복의 동남쪽에 있는 기산에 허유의 무덤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옛날 인(), 성인, 현인을 순서대로 열거하면서 오나라의 태백, 백이의 공적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허유, 무광이 절개와 의리가 참으로 고결한 분들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경과 서경에는 왜 이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을까에 대해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또 공자는 백이와 숙제를 평판하면서 그들은 남의 잘못함을 생각하지 않았고, 남을 원망하는 일도 없었다고 하고, 그들은 인을 구함으로써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리오? 하였답니다.

이것을 본 사마천은 백이의 심경을 엮은 채미가라는 시를 보고 공자의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애석하다고 느낍니다.

이 인이라는 것은 공자가 주창한 최고의 개념이었죠. 공자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이기는 극기가 최고 덕목이고 그러면 예가 돌아온다는 인간 본질적 개념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인의 실천 방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사람을 용서하고 공경하여 예절을 제시하였는데, 그게 유교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아무튼 왜 시경 서경에 백이와 숙제에 대한 인물을 쏙 뺏는지 알기 위해 알아봅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두 아들이었습니다.

고죽국(BC11 ~ BC664)은 상,주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 인민 공화국 허베이성 탕산시에 존재했던 국가였습니다. 국성은 자(), 씨는 묵태이었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수서 배구전에는 고려(고구려)의 땅은 본래 고죽국이 있던 곳인데 주()가 기자(箕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고, 한은 3군을 나누어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숙제를 왕위에 세우고 싶어 했죠,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양보했다고 합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이다.”라 하고는 달아나 버렸고, 숙제 역시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고 도망갔습니다.

나라 사람들이 가운데 아들을 왕에 모시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 무렵 백이와 숙제는 서쪽 지방의 서백 창이 노인을 잘 모신다는 말을 듣고는 찾아가 의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도착해 보니 서백은 죽고 무왕이 나무로 만든 신주를 싣고 문왕으로 추존한 다음 동쪽으로 은()나라를 토벌하려는 참이었습니다.

백이와 숙제는 말머리를 막아서서는 아버지가 죽어,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창칼을 들다니 효라 할 수 있겠소이까? 신하로서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라고 했습니다. 하니 좌우에서 이들을 죽이려 하자, 주무왕 참모인 여상 강태공이 의로운 분들이다.”라 하고는 한쪽으로 모시게 했다고 합니다.

무왕이 은나라의 난리를 평정하고 천하가 주나라를 받들었지만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비를 따서 먹었다고 합니다.

굶어 죽기에 앞서 채미가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저 서산에 올라 그 고비를 뜯는다. 폭력을 폭력으로 바꾸고도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 , 하는 이미 사라졌으니 우리는 어디로 돌아갈까나? , 우리는 죽음의 길로 간다. 가련한 운명이여!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렇게 볼 때 원망한 것인가, 아닌가? 노래를 지은 뒤 마침내 백이와 숙제는 굶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노자의 이야기를 들어 사마천은 자신의 억울함을 투영하였습니다.

 

노자의 이야기인즉슨 도덕경 5장의 내용이었습니다,

천도에는 사천이 없고 항상 선인을 돕는다.’ 노자의 원문은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탁약,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이며 해석하면

하늘은 마음 없다. 사람들이 고통을 겪든 말든 하늘이 인간사에 끼어드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긴다면 참혹한 재해가 일어나더라도 악한 이에게만 해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재해는 인간의 선악이나 지식의 높고 낮음이나 돈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 만사에 개입하거나 감응하는 절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인도 인간사에 끼어들지 않는다.

성인은 순리를 최고 가치와 행동 덕목으로 지킬 뿐 제 뜻을 인간사에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기고, 성인은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여긴다.

그저 자연법을 따라 되어 가는 것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추구는 중국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젯상 옆에 세우는 풀로 만든 강아지다.

제사가 끝나면 태워버리는 것이니 보존할 만한 귀한 것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연 백이 숙제는 선인이었을까?

인덕을 쌓고, 행위를 올바르게 했어도 결국 굶어 죽지 않았나라는 것이지요.

 

원본에는 이쯤에서 공자의 제자 이야기를 합니다.

공자의 제자는 70여 명 있었는데, 가장 아끼던 사람이 안연이었습니다.

인덕이 가장 고결했다고 공자는 느꼈는데 안연은 돈이 없어 굶기를 끼니처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영양실조에 몸까지 아파 굶어 죽게 됩니다. 여기서 과연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까? 하고 의심을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장자에 나오는 도척 이야기를 꺼내 듭니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 200년경에 살았던 장자에 나오는 절도의 천재 이야기입니다.

이 도척이란 자는 날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사람의 간을 회쳐 먹으며, 포학무도한 수천 명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끝내 아무런 천벌을 받지 않고 천수를 다 누렸다는 것인데 하면서 한탄합니다.

그런데 이 도둑 천재한테서는 싸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싸가지4가지를 좀 된 소리로 말하면 라고 발음되는데 인, , , 4가지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은나라 변방의 왕이 혁명이 성공하여 나라를 뒤집자 저런 흉악한 놈과 같이 하늘을 덮지 못하겠다고 산에서 나물 캐 먹다 죽은 백이와 물건을 훔쳐 살던 도척은 의인과 도덕이라는 구별은 있지만 결국 명예와 재물에 현혹된 점을 들어 둘 다 자유인으로써 멋진 삶을 살다 갔다고 장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싸가지는 결국 인간 자가당착의 논리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인의염치에 함몰된 부자연스런 억눌린 삶을 살라는 공자의 논리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암튼 도둑놈 도척의 싸가지를 들어봅니다.

장자의 제 10편 거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짝을 뜯는 도둑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끈으로 꼭 묶고 자물쇠를 단단히 잠그는데, 이것이 이른 바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랍니다. 그러나 큰 도둑이 들면 궤짝을 짊어지고 상자를둘러메고 주머니째 들고 달아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끈과 자물쇠와 고리가 단단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라는 것은 곧 큰 도둑을 위해 재물을 모아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척의 무리가 도척에게 물었답니다.

대장 "도적질에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이 말하길 "어디엔들 도가 없겠느냐?

도둑이 훔치러 들어갈 때 재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는 것을 도둑의 성(... 聖也)이라 하고,

훔치러 들어갈 때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을 도둑의 용(入先 勇也)이라 하며,

훔치고 나서 나올 때 뒤에 나오는 것을 도둑의 의(出後 義也)라 하고,

도둑질을 할지 말지 잘 판단하는 것을 도둑의 지(知可否 知也)라 하며,

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도둑의 인(分均 仁也)이라 고 하는 것이다.

 

이걸 보면 착한 사람이라도 도를 얻지 못하고, 도둑이라도 도를 얻지 못하면 세상에서 행세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들끓으니, 성인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은 적고 해롭게 하는 일은 많은 것입니다.

이는 지도자들이 착하게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걸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야 사회 구성원으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라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국민이 착하면 다루기 쉬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추진하기가 쉽고, 노예, 하인처럼 부리 먹기 쉽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그것은 몇몇 지도자들만이 누리는 혜택이 너무 많기에 더욱 괴리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마천은 말합니다.

근세에 와서 품행이 방탕하여 남에게 못할 짖을 마음껏 하고도 그 자신은 종신토록 호강하며, 그 자손에 이르기까지 부귀를 이어지는 예가 허다하다. 이런 일에 비하여 걸음을 한 번 내디뎌도 땅을 골라서 딛고, 한마디 하는데도 말해야 할 때만 하며 길을 갈 때도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대의명분이 서지 않으면 분발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재앙을 만날 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일 때문에 나를 아주 당혹하게 만든다고 하였고, 과연 하늘의 도가 옳은 것인가 하면서 책상을 칩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각기 실천의 도가 다르면 서로 꾀하는 바도 다르다. 만약 부귀가 뜻대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천한 말잡이라도 나는 직분을 맡을 것이다. 만약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 할 일이라고 합니다. 날씨가 추워져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는 다른 보통 나무보다 늦게 낙엽을 떨군다.’라고 했죠.

 

세상이 모두 혼탁할수록 청렴한 선비가 눈에 띄는 법입니다. 이것은 부귀를 무겁게 여기는 일반인의 생각과 부귀를 가볍게 여기는 선비의 사고는 비교하기 어려운 극단적이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죽은 다음에 명성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합니다.

한나라 문제 때 정치가이자 문인 가자라는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재화 때문에 죽고, 열사는 명성 때문에 죽고, 권세를 자랑하는 사람은 권세 때문에 죽고, 평범한 일반인은 생활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사마천은 이 글 마지막에서 같은 광명은 시로 비추고, 같은 무리는 서로 어울리기를 마치 구름이 용을 따르듯 하고, 바람이 법을 따르는 것과 같이 성인이 나타나야만 수많은 인제도 나타나는 법이라고 합니다. 백이와 숙제는 현인이지만 공자의 붓으로 인하여 그 이름이 드러났고, 안연이란 사람은 공자라는 말에 붙어 천리를 간 파리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세속에 숨은 현명한 사람들은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나지만, 그 명성이 묻혀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안타깝고. 안타깝다고 한탄합니다. 허유와 무광이란 사람이 드러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했습니다.

 

사마천은 이 글에서 하늘은 인간이 만든 최악의 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받은 형벌은 도대체 무엇의 기준이냐 하면서 울부짖으며 쓴 내용이었습니다.